[인문사회]내셔널리즘에 갇힌 韓-日, ‘평행선’으론 내일 없다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시작/다나카 히로시 외 엮음·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옮김/202쪽·1만 원·뷰스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옮김/202쪽·1만 원·뷰스

◇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한일, 연대 21 엮음/356쪽·1만5000원·뿌리와이파리

《일제의 한국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이에 대한 한국의 격렬한 규탄, 정치적 필요에 의한 화해…. 근현대사를 둘러싼 한일 관계의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그 근원은 일제의 침략이다. 일제의 조선 침략은 한일 양국에 깊은 갈등의 골을 남겼다. 3·1절이면 새삼 민족을 유린한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고 이에 저항한 선열의 의기에 숙연해진다. 아픈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최근엔 그 기억에 그치지 않고 이제 한일 관계의 적대주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일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내셔널리즘에 갇힌 韓-日, ‘평행선’으론 내일 없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모색하려는 양국 지식인들은 새로운 딜레마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한국 내의 극단적 반일 민족주의에 대한 일부 한국 학자의 비판이 일본의 반한 민족주의에 악용된 것이다. 이 같은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담은 책 두 권이 나왔다. 일본 지식인들이 적대적 민족주의의 발현인 ‘혐(嫌)한류’를 비판한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시작’, 한일 연구자들이 자국 중심의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한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다.

일본 내의 반한 민족주의인 혐한류에 대한 일본 지식인의 비판을 담은 ‘한국과 일본의…’는 일본 내 자국 중심의 편협한 역사인식에 도전한다.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세대의 일본 연구자 16명의 글을 모은 책이다.

혐한류는 2005년 ‘만화 혐한류’가 일본에서 발간되면서 확산됐다. 단지 한류 붐이 싫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한국, 재일 한국인, 일제 침략에 대한 책임 등 한국에 대한 적대의식의 총합이다. “일본의 조선 지배는 조선인이 먼저 바랐다. 식민 지배가 조선을 잘살게 했다. 재일 조선인 차별은 없다” 등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저자들은 혐한류가 일본 사회의 불안감을 적(한국)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하려는 극단적 내셔널리즘의 발현이라고 본다. 이 책은 목청 높여 싸우는 혐한류를 공격하는 대신 혐한류 논리의 맹점을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식민 지배가 조선을 잘살게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실제 조선으로 유입된 자금은 조선총독부 일본 직원의 월급으로 지출됐을 뿐 아니라 1930, 40년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으로 들어온 돈보다 일본으로 유출된 돈이 많았다는 통계자료를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같은 견해가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일본 민족주의자들의 비판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용기 있게 이 책을 펴냈다. “양국의 연대는 서로 악수하고 사이가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바라는 상대 이미지를 타자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양국 사이에 있는 골의 존재를 직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는 양국 연구자들이 ‘한일, 연대 21’이라는 모임으로 뭉쳐 2004∼2007년 4회에 걸쳐 서울에서 열었던 심포지엄의 결과물이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대학원 교수 등 18명의 글을 모았다. 한일 양국 상생의 미래를 위해 과도한 내셔널리즘의 틀을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것이다.

저자들의 기본 생각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일제의 한국 중국 침략의 역사를 침략국과 피해국의 시각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제국주의의 확장과 민족주의의 저항으로만 파악하다 보니 각국의 역사 인식의 내셔널리즘은 오히려 강화됐다는 게 이 책의 지적이다.

이런 견해가 국내 독자들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지향점 사이에서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딜레마에 대한 연구자들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우리의 역사, 동아시아의 역사를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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