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황금돼지해, 슬픈 ‘행운 중독증’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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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구술에서는 이슈의 쟁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아야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해법을 논리정연하게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동고 안광복 선생님이 오늘부터 ‘이슈&이슈’를 매주 연재합니다.》

2007년은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란다. 결혼하면 좋다는 ‘쌍춘년(2006년)’ 등 꼬리표가 붙은 해들이 흔히 그랬듯, 황금돼지해에도 저금통에서 보험에 이르기까지 관련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황금돼지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정해(丁亥)년의 ‘정(丁)’이 금을 뜻하는 붉은 기운을 상징한다는 등등의 설명이 나와 있지만,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자는 많지 않다. 심지어 역술인들까지 대부분 “근거 없다”고 잘라 말할 정도다. 한마디로 황금돼지해는 상술(商術)이 빚어낸 억지라는 얘기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파고들어 보자. 상술 때문에 만들어진 기념일이나 명칭은 하나 둘이 아니다. 왜 어떤 것은 크게 유행을 타지만 어떤 것은 별 반응 없이 잠잠해져 버릴까. 상업적인 성공은 사람들의 욕망을 바로 맞힐 때에만 찾아오는 법이다. 날로 발전하는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생각이 힘을 펼친다. 반면, 미신과 혹세무민(惑世誣民)은 흔히 불안하고 무너져 가는 사회에서 퍼져 나가곤 한다. 그렇다면 근거도 없는 황금돼지라는 ‘미신’이 널리 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점점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사회 현실을 보면 그 답이 쉽게 떠오를 터다.

‘황금돼지해’에 대한 믿음에는 좋은 점도 있다. 자기가 믿고 바라는 바대로 처지가 바뀌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재수가 좋고 돈 많이 번다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2007년이 정말 ‘황금돼지해’가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황금돼지해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을 ‘낮에 꾸는 꿈’이라고 표현했다. 꿈과 희망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노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황금돼지해’는 희망이 아니라 ‘행운’일 뿐이다. 이는 노력과 상관없이 나에게 좋은 운이 걸리기를 바라는 믿음이다. 사실 황금돼지해에 거는 기대는 로또 복권을 품에 안고 당첨을 바라는 요행심리와 별 다를 게 없다.

희망은 삶을 힘차게 이끌지만, 행운은 고통을 잠재우는 마약에 지나지 않는다. 마약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알코올 중독자는 처음에는 화가 나서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는 술을 마시기 위해 화낼 구실을 찾는단다. 우리는 희망 없는 미래를 잊기 위해 ‘행운’을 꿈꿀 대상을 끝없이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 걸까. 이 점에서 로또복권과 황금돼지는 닮은꼴이다. ‘행운중독’에 빠진 우리 사회의 모습이 슬프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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