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5년 佛뤼미에르형제 상업영화 상영

  • 입력 2006년 12월 28일 03시 05분


코멘트
1895년, 프랑스의 ‘시오타’라는 한 기차역.

선로를 따라 열차가 도착한다. 기차에 타는 사람들, 마중 나온 사람들,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이 영화의 제목은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였다.

이렇다할 시나리오는 없었다. 그냥 평범한 기차역의 풍경을 3분 동안 카메라로 비춘 뒤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음악은커녕 배우의 대사도 하나 없는 이 무성(無聲)영화는 마치 오늘날의 폐쇄회로(CC)TV 화면을 연상케 한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이 영화를 포함해 초(超)단편 영화 10편을 공개 상영했다. 지극히 초보적인 형태의 필름들이었지만 영화 시사회라는 것에 처음 가 본 관객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화면 속 풍경을 실제 상황인 것으로 착각했다.

열차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니….

이날 시사회에 모인 사람은 프랑스의 문화계 인사 30여 명. 뤼미에르 형제는 이들에게 1프랑씩의 입장료를 받았다. 그래서 이날은 세계 최초의 상업영화가 상영된 날로도 기록된다.

원래 영화를 처음 만든 사람은 뤼미에르 형제가 아니고 발명왕 에디슨이었다.

하지만 에디슨의 영사기는 여럿이 함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씩 구멍 속을 들여다봐야 감상할 수 있었다.

반면 뤼미에르 형제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관객을 상대로 시사회를 했다는 이유로 ‘영화의 시조’ 자리를 차지했다.

형제는 이후에도 무려 400여 편의 단편영화를 더 만들었다.

퇴근하는 노동자들, 일하는 대장장이, 아기에게 젖먹이는 모습 등 소재는 평범한 일상생활이었다(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뤼미에르 형제가 리얼리즘 영화의 선구자라 말하기도 한다).

비록 영화의 시작은 이처럼 미약했지만 그 이후 발전 속도는 놀라웠다. 영화는 불과 한 세기 만에 최첨단 특수효과와 복잡한 시나리오로 무장했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소질이 없었는지 다음의 한마디를 남기고 영화 제작을 중단하고 만다.

“영화는 참 미래가 암담한 발명품이란 말이야.”

그들이 지금 무덤에서 깨어나 오늘날의 영화 산업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