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포 3명 치어 숨지게 한 영국 변호사 무죄판결

  • 입력 2001년 2월 10일 15시 17분


길을 건너던 싱가포르 한국교포 3명을 차로 치어 숨지게한 영국인 여변호사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이에 불복해 현지 검찰이 상급법원에 항소를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1심 판결 이후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은 현지 검찰에 항소를 강력히 촉구해 왔고 한국의 한 시민법률단체는 이 판결을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로 보고 국제적 법률 자문을 자처하고 나섰다.

10일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싱가포르 지방법원이 최근 한국교포 일가족 3명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줄리아 엘리자베트 텁스씨(36)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싱가포르 검찰이 지난 8일 상급법원에 항소했다.

싱가포르 지방법원 오드리 림 판사는 텁스씨가 지난해 2월 3일 알렉산드르 가(街)에서 한국인 오은숙씨(35)와 그녀의 두 자녀 홍욱군(5), 지윤양(2) 등 3명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사고에 대해 "가해자가 부주의한 운전을 했다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림판사는 "텁스씨가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과속이나 부주의한 운전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무죄판결을 내렸다"고 말하면서도 "검사측이 의혹들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불충분한 심리였음을 인정했다.

오씨는 사고당일 오후 9시쯤 유모차에 딸을 태우고 아들과 함께 아파트와 식당가 사이의 왕복 6차선 알렉산드르가를 건너다 참변을 당했다.

사고 지역 주변에는 육교가 있었으나 유모차에 딸을 태운 오씨 가족은 평소 다니던 지름길로 귀가하다가 중앙분리대 부근 1차선에서 마주오던 텁스씨의 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당시 유모차는 사고지점에서 30m 떨어진 곳까지 튕겨나간채 발견됐다.

텁스씨는 사고순간에 대해 "피해자들이 중앙분리대에서 나와 차도로 뛰어들기 전까지 피해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 권오금 영사는 "1심 판결에 대해 한인사회가 우려하고 있으며 상급법원에 항소할 것을 싱가포르 검찰측에 강력히 촉구했다"며 "이에따라 검찰이 지난 8일 상급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텁스씨에 대해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자 싱가포르 한국교민들은 "교통사고로 1사람만 사망시켜도 징역과 벌금형을 내리는 싱가포르 법정이 영국인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싱가포르의 한 교포는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변호사인데다 그 남편까지 변호사여서 법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품게 한다"며 "교통사고로 세사람이나 죽었는데 가해자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교포는 "이번 판결로 한국인의 인권이 무시되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교포는 물론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대처해줄 것"을 당부했다.

싱가포르 영자일간지 '더스트레이츠타임스'는 1심 판결직후인 지난 1월 31일 '교통사고로 3명 숨지게 한 영국인 무죄판결'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크게 다뤘다.

한편 한국의 법률소비자연맹(상임대표 김대인)은 이 사건을 '소수민족 차별 판결'로 보고 자체 조사를 통해 민·형사소송 등에 관한 법률 자문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단체의 대외협력부 윤소라 부장은 10일 "이 사고는 해외교포들이 겪어온 법적 소외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미국 독일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들을 동원해 이 사건을 정밀하게 검토해 법률 자문을 하겠다"고 밝혔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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