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목표는 총선 승리가 아니다”[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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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네 번째)가 유정주 의원(이 대표 오른쪽) 등과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대표 왼쪽은 주철현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네 번째)가 유정주 의원(이 대표 오른쪽) 등과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대표 왼쪽은 주철현 의원.
“이재명의 목표는 더 이상 총선 승리가 아닌 것 같다. 원내 1당도 목표가 아닌 것 같다. 일단 당을 자기 사람들로만 채워서,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잡음 없이 가려는 게 최우선 순위인 것 같다.”

지난주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공천 파동에 대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151석 다수당이 총선 목표”라던 이 대표의 목표가 더 이상 총선 승리가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실제 21일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의원들 다수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2시간 동안 공천 관련 난상토론을 벌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15명의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친명(친이재명)계 지도부의 공천 심사에 대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죠.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이 대표는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는 전날까지도 의총 소집 자체를 불편해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아예 대놓고 불참한 겁니다. 안 듣겠다는 거죠. 비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가 오지 않은 것을 두고도 “완전히 ‘너네는 떠들어라, 나는 안 들으련다’는 식”이라며 “이렇게 동료 의원들을 무시해도 되냐”고 거세게 항의했습니다만, 그럼 뭐합니까. 어차피 메아리 없는 외침인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중 입을 가린 채 대화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 직후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비명계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진 이 자리에 이 대표는 불참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중 입을 가린 채 대화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 직후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비명계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진 이 자리에 이 대표는 불참했다. 뉴스1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 중 정청래 최고위원과 웃으며 대화 중인 이재명 대표.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 중 정청래 최고위원과 웃으며 대화 중인 이재명 대표.


“오늘 의총장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진짜 자칫 당이 쪼개질 수도 있겠더라. 비명계 의원들이 그렇게 줄줄이 난리치는데도 친명계 지도부는 그냥 ‘마이 웨이’로 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진다는데도, ‘져도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계파색 없는 한 재선 의원)

“이재명은 더 이상 총선 승리에는 관심이 없다. 일단 민주당을 ‘이재명당’으로 싹 물갈이하고, 8월 전당대회에 한 번 더 출마해 당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것 같았다. 공천으로 그 동안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조기에 모두 제거하려는 것 아니겠냐.”(비명계 초선 의원)

“내가 일부러 의총을 끝까지 전부 다 지켜봤는데, 지도부는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가결표 던졌을 법한 비명계는 다 빼버리려는 것 같다. 이제 사법리스크, 검찰과의 대결은 얼추 다 끝났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총선에서 지면 이재명 자신의 정치생명도 끝이다. 무엇보다 당이 쪼그라들면 재판에서도 절대 유리하진 않을 텐데, 뭘 믿고 저러나 싶다.” (비명계 중진 의원)

의총 당일 오후 통화한 의원들의 날 서 있던 반응입니다. 계파색이 없는 의원조차 사태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더군요. 친명계는 친명계대로, 비이재명계는 비명계대로 “갈 데까지 한 번 가보자”는 분위기였다는 거죠. 이들은 이 대표가 총선 패배를 감수하더라도, 당 색채를 확실한 ‘이재명당’으로 바꾸려고 하려는 것 같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21일 본회의장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민주당 의원들. 맨 뒷줄은 이인영 의원, 그 아래는 왼쪽부터 전해철, 정필모, 조승래 의원, 그 앞줄은 윤영찬 의원.
21일 본회의장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민주당 의원들. 맨 뒷줄은 이인영 의원, 그 아래는 왼쪽부터 전해철, 정필모, 조승래 의원, 그 앞줄은 윤영찬 의원.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환 의원은 23일 MBC 라디오에서 하위 20%를 받은 현역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말에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당에 서른한 분 정도가 가결표를 던졌고, 열 분 정도는 기권 무효표를 던지지 않았는가. ‘도대체 누가 가결표를 던졌냐’는 논쟁이 한참 이뤄지던 시기에 의원들이 다면평가를 했고, 당직자들이 다면평가를 했고, 그리고 그 해당 지역의 권리당원들도 여론조사에 응했다. 이 요소들이 평가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9월 이 대표에 대한 두 번째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뒤 의원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는데, 그 때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감점을 받았을 거라는 취지입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실제 누가 찬성표를 던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체포동의안 표결 직후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 감별 논쟁이 본격 이어졌던 만큼 비명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하위 20% 결과에 상당 부분 반영됐을 거란 거죠. 당 지도부가 스스로 가장 민감한 부분을 언급한 겁니다. 처음엔 라디오에서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오히려 김 의원은 이날 저녁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며 쐐기를 박더군요.

그는 기고문에서도 “당시 민주당 의원 30여 명이 가결표를 던지고, 무효와 기권 10명을 포함하면 약 40명이 이 대표를 체포하라는 데 동의한 셈이었다”라며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예상된 의원들의 명단이 소셜미디어 상에 한참 떠돌았다. 의원들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어떤 의원들이 가결표를 던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이상의 글은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다”고 덧붙였고요.

당내에선, 돌이켜보면 이 대표가 지난 13일 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썼던 것이 이번 비명계 물갈이의 신호탄이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날 이 대표는 그날 그 시간까지 친명 핵심 의원들과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공천 관련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죠. 어떻게 보면 이 문구가 공천 파동을 예고했던 셈입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한 비명계 의원은 “시스템 공천이라고 믿었는데, 시스템 붕괴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은 “아무리 이재명이라 해도, 다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공천을 자기 마음 먹은대로 할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제가 작년 9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 ‘우리는 아직도 이재명을 너무 모른다(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922/121315060/1)고 썼었는데요, 여러분들 모두 아직도 너무 모르는 겁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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