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흙수저’ 김기현…울산시장 낙선 ‘최대 위기’ 딛고 與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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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3월 8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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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2.24/뉴스1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2.24/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3·8 전당대회에서 52.93%의 득표율로 과반 이상을 득표해 신임 당대표로 당선됐다. 이로써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치러진 첫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당 대표가 됐다.

김 후보가 당내 최고 지도자이자, 국가의전서열 7위인 여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학창시절 부친의 병세 악화로 어려운 집안환경에서 학업을 마쳤고, 정계 입문해서도 옅은 계파색으로 ‘정치 흙수저’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2018년 3선 중진이던 김 후보는 제 7대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 재선에 도전했으나, 선거 직전 경찰의 압수수색에 결정타를 입었다. 결국 송철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패해 낙선하며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21대 총선에서 당선돼 4선 고지에 올랐다. 여기에 2021년 4월30일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원내사령탑을 맡으며 정치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원내대표를 맡은 김 후보는 국민의힘이 101석의 제1야당이던 시절 ‘여대야소’ 국면에서도 적극적인 대여투쟁과 안정적인 당 운영을 보여줬단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법’ 저지, 2021년 7월 상임위원장 재분배 합의에 따른 후반기 법사위원장 확보 등 성과가 대표적이다. 원내에서도 당시 이준석 당대표와 윤석열 대선후보 사이에서 회동을 주선하며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했다는 평이다.

◇“공부만이 살길”…기운 가세에 ‘흙수저’로 서울대 법대 졸업

10대조부터 울산에서 살아온 김 후보는 도 의원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별 문제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병세가 악화되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7남매를 키우며 남편 병수발까지 책임진 어머니 덕분에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김 후보는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공부만이 살 길이다. 집안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에 매진하라”는 당부를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어려워진 형편에 차비가 없어 40분 거리인 학교를 매일 걸어 다녔지만, 한 차례 재수 끝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판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정치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승소로 이름을 날린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판사가 된 그는 집안 반대에도 고교시절 교회에서 만난 1년 후배 이선애 여사와 13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유력한 집안과 결혼하길 바랐던 아버지에게 “저는 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판사는 국민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고 그에 대한 처벌을 내리는 직업이 아니냐”며 “연애시절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저부터 약속은 지켜야함이 도리인걸로 알겠다”고 설득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선거개입’ 의혹 속 울산시장 낙선…정치인생 최대 위기

2003년 한나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 울산 남구을에서 당선되며 등원했다.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17·18·19대)에 성공한 그는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해 민선지방선거 이후 울산시장으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그는 울산시장 재선에 도전했으나, 경찰이 시장 비서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서며 치명타를 입었다. 그는 전국 시·도지사 업무수행 긍정률 1~2위를 다툴 정도로 호평을 받았고, 당시 경쟁자이던 송철호 민주당 후보와도 큰 격차를 보였으나 결국 낙선했다.

이후 그는 2년간 원외에서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투쟁을 이어가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맏아들을 포함해 슬하에 1남 3녀를 둔 김 후보는 선거 당시 온 가족이 발 벗고 유세를 도왔으나 낙선해 아쉬움이 더 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시기 가족들과 가까이 소통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했다고도 했다.

그러던 그는 21대 총선에서 다시 울산 남구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4선 고지에 올랐다. 국회에 재입성한 그는 21대 국회 두번째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해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김 후보는 1차 투표에서 101표 중 34표, 결선 투표에서 100표 중 66표를 얻어 김태흠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원내사령탑을 맡았다.

◇‘무계파’에서 ‘친윤’ 지지 업고, 긴밀한 당정관계 기대감

김 후보는 평소 자신을 계파가 없는 ‘무계파’로 주장해왔으나, 이번 경선을 겪으며 친윤계 핵심과 손을 잡으며 계파색이 짙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선 초부터 이른바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 김 후보에게 있다고 전해졌고, 이에 따라 친윤계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지지율 급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당 안팎의 지원에도 경선 과정 또한 그의 정치역정처럼 순탄치만은 않았다. 경선 초기엔 ‘탄핵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고, 친윤계가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자 그 과정에서 주춤하기도 했다. 또 다른 후보들로부터 ‘울산KTX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집중 공세를 받았고, 막판까지도 ‘대통령실 전대 개입’ 의혹 등 논란이 이어져 곤혹을 치렀다.

결국 그의 당선 과정도 그가 걸어온 ‘롤러코스터’ 역정과 닮은 셈이다. 전폭적인 지원에도 김 후보가 경선 초기 부진한 지지율을 보이자, 정치권에선 낙선시 정치적으로 재기가 어려울 거란 전망이 파다했어서다. 하지만 그는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당대표 자리에 올랐다.

Δ울산(1959년생) Δ부산동고등학교 Δ서울대 법과대학 Δ사법고시 25회 Δ부산지법 울산지원 판사 Δ4선 국회의원(17·19·19·21대) Δ한나라당 원내부대표 Δ한나라당 대변인 Δ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Δ제6대 울산광역시 시장 Δ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Δ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Δ국민의힘 원내대표 Δ국민의힘 6·1지방선거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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