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성폭행 당하며 숨져” 엄마가 세운 세 광고판… 분노, 복수 그리고 용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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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화 ‘쓰리 빌보드’

냉정해 보이면서도 상처에 아파하는 어머니 역을 소화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이 연기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냉정해 보이면서도 상처에 아파하는 어머니 역을 소화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이 연기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내 딸이 강간당하며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러비(경찰서장)?’

마을 입구의 한적한 들판, 이런 문구가 쓰인 3개의 도발적인 빌보드(광고판)가 등장한다. 표지판을 세운 건 강간범에게 비참하게 딸을 잃은 어머니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아직 범인을 잡지도 못했는데 세상의 관심이 사라지자 그는 내버려진 광고판에 문구를 새겨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서장과 무심한 마을을 향해 절규 섞인 메시지를 전한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쓰리 빌보드’는 이렇듯 처음부터 메시지가 묵직하다.

조용했던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와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무능한 경찰로 낙인찍히고, 이웃 주민들은 경찰의 편에 서서 그녀와 맞서기 시작한다. 언뜻 영화는 한 맺힌 어머니의 처절한 복수전으로 흘러갈 듯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예상을 깨부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가 펼쳐진다.

영화는 어느 한 캐릭터도 절대적인 피해자나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윌러비는 비록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매우 성품이 좋은 인물로 그려진다. 사고뭉치 딕슨도 어머니 말에 껌뻑 죽는 철없는 아들이다. 딸을 잃은 고통에 발버둥치는 어머니도, 그녀에게 애꿎은 분풀이 상대가 된 경찰관과 경찰서장도, 밀드레드에게서 등을 돌린 마을 주민들도 결국은 피해자일 뿐이다.

어머니 밀드레드는 제90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맥도먼드의 연기 덕분에 입체적 캐릭터로 완성됐다. 딸의 죽음에 비통해하고 범인을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남겨진 아들에겐 냉정하다. 온갖 분풀이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면서도 그 대상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덩달아 흔들린다. 시종일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영화지만, 그 과정을 통해 희망과 용서를 말한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쓰리 빌보드#프랜시스 맥도먼드#아카데미 여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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