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봄의 여왕 벚나무, 고급가구의 목재로도 최상급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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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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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고 쓰임새 많은 한국 벚꽃 이야기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변의 왕벚나무가 늘어뜨린 가지에서 피어난 꽃들이 시선을 유혹한다. 왕벚나무 꽃은 잎이 나기 전에 연분홍 또는 흰색으로 가득히 피어나는 까닭에 유난히 아름답다. 하지만 길어야 열흘 뒤엔 꽃비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버찌)가 열리는 비율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허망함이 사람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변의 왕벚나무가 늘어뜨린 가지에서 피어난 꽃들이 시선을 유혹한다. 왕벚나무 꽃은 잎이 나기 전에 연분홍 또는 흰색으로 가득히 피어나는 까닭에 유난히 아름답다. 하지만 길어야 열흘 뒤엔 꽃비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버찌)가 열리는 비율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허망함이 사람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
벚꽃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를 하나씩 떠올려 보자. 예쁘다, 환하다, 화려하다, 아기자기하다, 아름답다….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온통 찬사 일색일 거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않을까. 벚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들만 봐도 그렇다.

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여좌천변. ‘전국 꽃축제의 대장’ 격인 진해군항제(1∼10일)는 올해로 벌써 50주년이다. 추운 날씨 탓에 개화가 늦어져 애를 태우던 벚꽃들은 5일을 전후로 만개했다. 활짝 핀 꽃들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었다. 화려한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길게 줄까지 섰다. 눈높이까지 드리워진 가지와 만나면 꽃잎 하나하나에 카메라 렌즈를 갖다댔다. 올해 벚꽃을 보러 창원을 찾은 관광객은 202만 명. 어디 진해뿐이던가. 서울에서도 ‘한강여의도 봄꽃축제’(13∼17일)와 ‘석촌호수 벚꽃축제’(13∼15일)가 열리는 등 4월의 주인공은 단연 벚꽃이다. 그만큼 벚꽃은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벚꽃과 관련한 논란도 많다. 대표적인 게 왜색 논쟁이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에 왜 한국인이 열광하느냐는 것이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제주도라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된 후에도 “원래 우리 꽃이니 괜찮다”는 쪽과 “어쨌거나 일제가 심은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일부는 양쪽을 싸잡아 조롱한다. 꽃이 좋으면 그냥 즐기면 되지 웬 감정싸움이냐고. 그러면 또 다른 이가 꼬리를 잡는다. 꽃과 관련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 스토리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되지 않느냐고.

○ 왕벚나무의 해묵은 국적 논란

우리가 열광하는 벚꽃은 왕벚나무의 것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벚나무는 우리나라에만 16종이 자생하고 있다. 왕벚나무, 올벚나무, 산벚나무, 개벚나무, 산개버찌나무, 섬개벚나무, 귀룽나무 등이다. 세계적으로는 최대 400종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많은 벚나무 중에서도 왕벚나무가 특히 각광받는 이유는 잎이 나오기 전 피는 꽃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왕벚나무의 학명은 ‘프루너스 예도엔시스(Prunus yedoensis)’다. 일본에선 ‘소메이 요시노(染井吉野)’라 불린다. 영어 이름도 대부분 ‘도쿄 체리’ ‘요시노 체리’ 등 일본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1901년 일본의 마쓰무라(松村) 박사가 ‘도쿄 식물 잡지’에 왕벚나무의 존재를 발표하면서 학계에 처음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908년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에서 왕벚나무의 표본을 채집했다. 이를 전해 받은 독일 베를린대의 쾨네 박사에 의해 1912년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이 처음 알려졌다. 왕벚나무의 해묵은 원산지 논란은 사실상 이때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1932년에는 일본 교토제국대의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 박사가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벚나무는 ‘사쿠라나무’라 하여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고, 광복 이후에는 상당수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제주 서귀포시 신례리(천연기념물 156호), 제주시 봉개동(159호), 전남 해남군 구림리(173호) 등 왕벚나무 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0년대 전국적으로 식재된 왕벚나무들은 자생종이 아니라 인공교배를 통해 육종된 일본 왕벚나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요약하자면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일본이 아닌 제주도가 맞다. 1990년대 이후 유전자 분석을 활용한 다양한 연구결과들도 ‘제주 원산지설’을 명확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나 아직 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제주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증거다. 미국 농림부 산하 식물과학연구소의 정은주 박사는 “일본의 왕벚나무들은 하나의 개체에서 꺾꽂이 등 인공증식을 통해 키워낸 것이라는 사실이 여러 논문에서 밝혀졌다”며 “제주가 왕벚나무의 자생지라는 과학적인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든 왕벚나무를 현재와 같은 식물자원으로 발전시킨 그들의 관심과 기술, 그리고 사랑은 분명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급목재로 각광받는 벚나무


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조(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條)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벚나무 관련 기록이 있다. 765년(경덕왕 24년) 3월 왕이 귀정문(歸正門)으로 청한 충담을 묘사하면서 “승려 한 사람이 누더기를 입고 앵통(櫻筒)을 지고 남쪽에서 오므로 왕이 기뻐하여 누상으로 청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앵통이란 벚나무 목재로 만든 도구상자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을 오래전부터 벚나무를 목재로 사용해 왔다. 벚나무 종류 중 특히 목재로 가치가 높은 것은 산벚이다. 목재조직학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벌여 경판의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데 널리 사용했다. 제주에선 예로부터 ‘사오기(산벚나무)’와 ‘굴무기(느티나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느티나무는 노르스름하면서 붉은빛이 돌고 나뭇결 무늬가 큰 것이 특징인 반면 산벚나무는 붉은 기운이 나는 흑갈색에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뛰어나다. 왕벚이나 올벚도 목재로 쓰긴 하지만, 나무가 굵지 않고 뒤틀림이 많아 산벚보다는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지역 토박이로 30년 이상 가구를 만들어 온 ‘서호공방’의 양승필 씨(58·제주시 애월읍)도 벚나무를 첫손에 꼽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산벚나무, 특히 제주산은 색깔이 깊고 표면이 매우 깨끗해 목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며 “자연산은 이제 쉽게 구할 수가 없고, 구하려 해도 값이 매우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벚나무는 활을 만드는 주요 재료이기도 했다. 벚나무 껍질(화피·樺皮)을 활의 뼈대에 감싸면 방수효과와 함께 탄력이 증대된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는 인조가 전쟁에 대비할 목적으로 심도록 했다는 설도 있다.

○ 신한류를 꿈꾸는 한국 벚나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한국보다 조금 이른 3월 하순부터 벚꽃 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행사다. 포토맥 강변을 수놓은 3000여 그루의 왕벚나무들은 1912년 일본이 선물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당연히 아름다운 벚꽃의 향연을 일본인 덕분이라 생각한다.

늦었지만 한국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0년 미국 워싱턴의 아메리칸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지난해 4월 ‘한국정원’을 정식 개장했다.

▶본보 2011년 4월 20일자 A2면 4그루 ‘이승만 왕벚나무’ 200그루 ‘한국정원’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3년 이 대학에 심은 왕벚나무가 제주산이라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산림과학원 측은 아메리칸대에 벚나무를 포함해 다양한 한국산 나무와 식물을 지원키로 했다. 문제는 미국의 까다로운 검역절차. 벚나무는 원래 미국에선 수입금지 식물이다. 벚나무가 옮겨온 질병에 ‘친척’인 살구나무나 자두나무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허가를 받긴 했지만 검역에는 3년 이상이 걸릴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의 김찬수 박사는 “나무 묘목은 아예 보내지 못했고, 조직 배양을 위한 벚나무 싹을 미 농림부에 보내 현재는 격리된 재배장에서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박사는 이달 26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산림과학원 창립 9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심포지엄 주제는 ‘한국정원의 세계화, 어떻게 할 것인가’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 등은 자국의 문화를 홍보하고 전파하기 위해 정원을 조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아메리칸대의 한국정원이 시발점이 되겠지만, 다른 나라에도 우리 정원이 많이 보급돼 한국의 아름다움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벚나무#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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