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 1960년대의 비틀스, 21세기 팝과 경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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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6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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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와 CD시대의 완벽한 종말?…온라인 뮤직 플랫폼으로 통일
● 신세대들에게 '디지털 싱글'이 아닌 '앨범'의 위대함 증명 계기


현대 대중음악의 상징인 비틀즈가 애플의 아이튠즈에 입성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현대 대중음악의 상징인 비틀즈가 애플의 아이튠즈에 입성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국이 낳은 '비틀스(Beatles)'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전설적인 뮤지션이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이외에도 독특한 기록 두 가지를 갖고 있다. 첫째,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온라인 음원을 판매한 적이 없다. 둘째, 영화에 삽입된 OST 가운데 비틀스 노래가 단 한곡도 없다!

'현대 대중음악의 시작과 끝'이라는 찬사와 함께 불후의 명곡 수 백여 개를 부른 세계적 밴드라고 하기에는 어리둥절한 기록이다. 누구라도 MP3 플레이어에는 비틀스 음원이 다수 담겨 있고, 영화에서도 이들의 노래는 빈번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 기록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비틀스 마니아들은 CD나 오래된 LP 앨범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CD를 MP3로 변형해 듣거나 영화에서도 커버밴드(모방밴드)가 부른 카피 음원을 감상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같은 불편은 이제 사라지게 됐다. 전 세계 최대 음원시장인 애플(아이튠즈)이 나서서 음반사 애플(비틀스)과의 협상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 무려 30년에 걸친 협상과정…스티브 잡스 집념의 승리

"Tomorrow is just another day. That you'll never forget."(애플 아이튠즈)

11월15일 애플은 자사 홈페이지에 "당신에게 내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란 문구를 내걸었다. 전 세계 애플과 아이튠즈 이용자들이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머리를 한데 모았다. 상당수 이들이 "아마도 클라우딩 기반의 아이튠즈 서비스 일 것이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애플이 의미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 비틀스의 음원을 판매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신기술을 고대했던 이들은 실망했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이제까지 비틀스 음악을 디지털로 듣는 것은 대단히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비틀스 멤버들에게도 이 소식은 꽤나 의미심장한 소식이었는지 폴 매카트니는 직접 아이튠즈 동영상 광고에 출연해 아이튠즈 유저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링고스타도 "언제쯤이면 비틀스 음악을 아이튠즈에서 들을 수 있겠느냐는 문의를 안받아도 돼서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살아있다면 올해 70살이 되는 존 레논의 미망인 오노요코 역시도 "존 레논의 70번째 생일에 이런 일을 진행하게 되어 기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애플사의 CEO인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긴 여행이 드디어 끝나는 것 같다…아이튠즈 열고서 10년 동안 꿈꿔오던 소망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스티브 잡스는 비틀즈의 광팬으로 알려졌다. 애플이란 회사명도 비틀즈의 음원 소유권을 가진 애플Corps Ltd에서 따왔을 정도다. (로이터)
스티브 잡스는 비틀즈의 광팬으로 알려졌다. 애플이란 회사명도 비틀즈의 음원 소유권을 가진 애플Corps Ltd에서 따왔을 정도다. (로이터)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비틀스의 마니아였다.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의 회사 이름도 비틀스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애플(Apple Corps)'에서 차용했다는 얘기가 있었다(이 Apple Corps가 비틀스 음원에 대한 권리를 다수 갖고 있다). 실제 이름이 비슷한 1980년대의 두 아이콘들은 치열한 상표권 분쟁을 벌여왔다

때문에 잡스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여행(long and winding road)'라고 표현한 데는 아이튠즈의 설립과 관련된 역사적 분쟁이 숨겨져 있다.

먼저 1978년 시작된 상표법 분쟁 때 두 회사는 극적인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 서로의 영역, 즉 음악과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은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수차례 합의금을 줘야 할 정도로 갈등이 심각했지만 당시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IT와 문화산업이 극적으로 접목되면서 이 합의는 심각한 모순이었음이 드러난다.

2002년 MP3플레이어인 아이팟 구상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는 온라인 음원 시장인 아이튠즈를 구상했고 30년 전에 자신의 회사가 내린 결정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시대의 변화와 수차례 협상을 통해 양측은 화해 국면에 돌입했지만 세계 최대의 음반 유통 서비스로 성장한 애플사의 아이튠즈에 원조 애플과 EMI 등의 대형 음반사는 비틀스 음악을 쉽게 허락할 리 없었다. 비틀스야 말로 앨범 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해체된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량이 상위권에 위치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아이튠즈 전면에 나서게 된 비틀스의 의미는 결코 작을 수 없다. 그런 오래된 앙금의 벽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허물어지고 양측이 온전하게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비틀스의 아이튠즈 입성이 지니는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비틀스 마니아들을 10대로 넓히다.

아이튠즈 개봉 첫 주의 성적은 지나치게 훌륭하다. 23일 음악 잡지 빌보드에 따르면 16일 판매를 시작한 비틀스 음악은 앨범만 45만 장, 개별 노래는 200만 곡 이상이 팔렸다. 톱 가수의 새 앨범을 아이튠즈에 판매할 경우 평균적으로 첫 주 디지털 음원 판매량은 10만¤30만 장, 디지털 앨범 판매량은 4만¤28만8000장선이다.

현재 전 세계 비틀스 마니아들은 대개 40~80대가 대부분이다. 비틀스가 역사상 최고의 록 밴드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들의 주된 활동 시기가 1960년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10대와 20대에게 비틀스는 '예스터데이'를 부른 추억의 가수일 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아이튠즈 입성을 계기로 젊은이들도 대중음악의 클래식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비틀스'가 아이튠스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주만에 앨범 45만장, 200만곡이나 판매됐다. 로이터
'비틀스'가 아이튠스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주만에 앨범 45만장, 200만곡이나 판매됐다. 로이터

▶②디지털 싱글이 아닌 앨범의 마력을 전파하다.

이번 아이튠즈에는 비틀스 전 앨범과 노래가 올라왔다.

1969년 발매된 비틀스의 11번째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는 아이튠즈에서 9번째로 많이 다운로드된 앨범이 됐다. 콘서트, 다큐 등이 포함된 149달러짜리 비틀스 앨범 세트는 아이튠즈 판매 순위 33위에 오르기도 했다. 앨범 가격은 12.99달러이고 음악 1곡당 가격은 1.29달러다. 물론 앨범으로 사는 것이 훨씬 싸고 이왕이면 모든 앨범을 한번에 구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지금까지 젊은 세대들은 비틀스의 유명 노래들을 개별적으로 알았을 뿐이지 앨범 전체를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음악 전문가들은 "비틀스 시대와 현재의 디지털 음원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앨범의 완성도 여부"라고 입을 모은다. 앨범 시대에는 뮤지션들이 마치 책을 쓰듯 십여 개의 노래들이 큰 컨셉트 안에 일관성 있게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3분짜리 단 한 개의 노래를 얼마나 파괴력 있게 전달하느냐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틀스가 단순히 유명 스타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로 대접받는 이유가 "한 앨범에 모든 음악적 역량을 집결시켜 통합적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낸 점"이기 때문에 비틀스 전 앨범의 음원화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전할 수 있다.

▶③LP와 CD등 유형 미디어 시대의 종말

대중음악의 제왕 비틀즈는 지금까지 온라인 음원을 판 적 없다. 때문에 아이튠즈 입성은 LP와 CD 시대의 종언이란 의미를 갖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대중음악의 제왕 비틀즈는 지금까지 온라인 음원을 판 적 없다. 때문에 아이튠즈 입성은 LP와 CD 시대의 종언이란 의미를 갖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물론 현재 아이튠즈에는 1억 곡이 넘을 정도로 현 시대에 활동하는 거의 모든 뮤지션의 음원이 올라온 상태다. 때문에 비틀스라는 오래된 밴드의 참여에 그리 중차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단순히 "중요한 뮤지션 하나가 디지털화 됐다"고 평가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대중음악의 급격한 디지털화를 반추해 볼 때 비틀스의 입성은 그래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직도 상당수의 원로 아티스트들이 디지털 음원 서비스에 깊은 반감을 표시한다. 아날로그 음악이 CD로 바뀔때보다 그 반감은 더 컸다. 개별 노래들이 하나하나 쪼개져서 컴퓨터에 나열될 경우 앨범의 의미가 해체될 뿐만 아니라 음악의 본질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우려였다.

그런 인물 가운데 대표 주자가 비틀스였고, 이들은 크게 하나의 세력을 이루어 이제까지 숱한 온라인 회사들과 최후에는 애플의 아이튠즈에 대항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틀스 진영이 디지털화라는 시대의 대세를 따르게 됨으로써 100여 년간 공고하게 유지되던 유형의 미디어, 즉 CD와 LP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이제는 음원의 디지털화를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 셈이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과연 비틀스는 21세기의 10대들에게도 예전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앨범시대의 전통을 후배들에게 이어줄 수 있을까? 해체된 지 40년이 지난 현재도 비틀스는 여전히 뜨거운 뮤지션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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