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시작은 다르지만 결말은 같은 美- 英은행들

  • 입력 2009년 2월 17일 02시 55분


애비, 바클레이스, HBOS, HSBC, 로이즈TSB, 네이션와이드빌딩소사이어티,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스탠더드차터드 등은 지난해 10월 8일 부분 국유화가 된 영국의 주요 8개 은행이다. 앞서 노던록, B&B와 같은 모기지 전문 금융회사에 대대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국유화를 단행했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이런 과감한 조치 덕에 세계 금융위기의 해법을 제시한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올 초 RBS가 재차 위기에 빠져들자, 영국 정부는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 같은 전격적인 조치를 단행하며 사실상 국유화를 선언했다. 그 결과 RBS는 1월 19일 하루에 주가가 무려 67% 폭락했다. 고점 대비 최고 98% 폭락한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한때 월가에 이어 세계 금융의 핵심으로 떠올랐던 영국 금융가가 오히려 영국을 집어삼키는 괴물로 변신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파생금융상품의 취급 범위가 작아 미국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영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가 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서브프라임 자산에 대한 유동화 비율이 낮다는 데 있다. 즉 미국은 과도한 유동화를 통해서 부실자산의 실체조차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면, 영국은 저조한 유동화 때문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부실을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금융위기는 투자은행, 상업은행, 모기지 은행, 보험사까지 전방위로 번져 나갔지만 영국은 은행에 집중적인 타격이 가해졌다.

문제의 RBS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상업은행이었으나 미국의 ABN암로를 인수하면서 급격하게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2000년 영국의 내트웨스트(Natwest) 은행을 시작으로 2007년 유럽의 인수합병(M&A) 사상 가장 큰 규모였던 ABN암로 인수까지 RBS는 세계 M&A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그것이 바로 승자의 저주였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해 RBS의 순손실 중 대부분이 바로 부실대출과 폰지 사기에 연루된 ABN암로 관련 부실이었거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채권투자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국과 영국의 은행은 문제의 시작과 진행 과정은 달랐지만 둘 다 탐욕을 주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결말은 닮아 있다.

자본시장법 발효와 출자총액제한 해제 같은 민감한 숙제가 던져져 있는 한국은 과연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박경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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