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묵]獨善으로는 설득 못한다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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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자 본보 오피니언 면에는 ‘직업공무원제 보호와 소청심사제도’라는 소청심사위원장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 기고문이 실리기까지에는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기고문은 6일자에 보도된 ‘소가 웃을 訴請(소청)심사’라는 기사에 대한 해명이다.

기사는 소청심사제도가 당초의 취지와 달리 비합리적으로 운영돼 공복(公僕)들의 ‘제식구 봐주기’ 식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가 나가자 반향이 컸고, 국가청렴위원회도 실태조사를 통해 개선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 기사에 대해 소청심사위는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 소청 결정이 무리한 관용을 베풀고 있지 않은데도 일부 사례만을 선별적으로 적시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은 근거가 허술했다. 하지만 기고문 게재를 통해 일을 마무리 지은 시점에서 이를 새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현 정부의 국정홍보정책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본보는 이 기사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기고문을 실을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하겠다는 절충안을 중재위에서 제시했다. 내용에 하자가 없어 소송까지 가더라도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국가기관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정정보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절충 끝에 기고의 형식을 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뒤에도 기고문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정정’이나 ‘반론’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한동안 굽히지 않았다. 결국 줄다리기 끝에 기고문이 나가긴 했지만 원만하게 해결하려 했던 나름의 ‘선의’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열관’의 모습이 얼핏 떠오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정을 알아본즉 그것은 소청심사위가 아니라 국정홍보를 담당하는 ‘힘센’ 부서의 뜻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이 청와대인지 국정홍보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국정홍보를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정책은 기사에 사소한 잘못이라도 있으면 정정보도를 신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신문에 대해서는 좋은 사안이건, 나쁜 사안이건 간에 기고는 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경직된 대언론 정책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독일의 슈피겔지를 봐라. 독일 정부도 자기들을 억지 비난한 슈피겔지를 상대하지 않고 있는데 당연한 일 아니냐”고 설명하기도 했다.

국정홍보는 일방적인 선전이나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 객체인 국민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해와 협조를 도출해 내는 것이 본연의 기능이다. 그래서 국정운영도 그렇지만 국정을 홍보하는 것도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언론은 그 중간에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특정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국정홍보는 아닐 것이다.

사실 관계는 제쳐놓은 채 언론과의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편가르기’와 ‘코드정책’의 또 다른 모습이다.

최영묵 사회부장 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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