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구타 금메달’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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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잡고 막 흔들고… 신발로 머리 때리고… 주먹으로 머리 때리고… 장난도 아니었다. 샤워를 하는데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머리가 아파 자지도 못했다.”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운동한 날이 없다.” “머리채를 잡혀 쥐어흔들리고 있으면 여자로 태어나 머리가 긴 게 원망스러운 적도 많았다.” “내가 맞을 때는 안 보이니까 잘 몰랐는데 남들이 맞는 것을 보면 정말 무섭고 마음이 아프고 미칠 지경이었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

▷어느 미개국 포로수용소의 잔혹상이나 특수부대의 ‘소원 수리’가 아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여자쇼트트랙 국가대표선수들이 코치들에게서 당한 상습 구타와 비인간적인 대우를 적은 자술서 내용이다. 그동안 각종 세계대회에서 선수들이 보여 준 정상의 기량 뒤에 이 같은 학대와 눈물이 서려 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격투기 종목도 아닌 기록경기인 데다 구타의 피해자가 여성이고 이 중 3분의 2는 앳된 여고생이라는 사실에 더욱 분노를 느낀다.

▷금메달도 여러 종류가 있다. 땀과 노력으로 일군 순수 금 은 동메달이 진정한 메달이지만 눈가림 속임수로 따낸 ‘사기 메달’, 돈을 처바른 ‘돈 메달’, 약물로 신기록을 낸 ‘도핑 메달’, 심판을 매수해 받은 ‘쥐약 메달’, 눈가림과 속임수로 훔친 ‘반칙 메달’, 승부 조작으로 얻어 낸 ‘담합 메달’, 남자를 여성으로 바꿔치기해 차지한 ‘성(性)전환 메달’도 있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것은 구타와 폭력으로 얻어낸 ‘구타 메달’이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5000년 문화민족의 수치다.

▷추한 결합은 상처를 남기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추억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고된 훈련은 설령 메달을 따지 못해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지만 구타로 따낸 메달은 영광은커녕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이제 더는 구타에 의한 스포츠강국을 꿈꿔서는 안 된다. 구타로 얻은 메달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폭력 남편과 폭행 아빠가 합리화되고 폭압 정권도 정당화된다. 설령 메달을 하나도 못 따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를 구타해서는 안 된다. 스파르타식 훈련과 구타는 100% 다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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