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바우덕이'…불꽃처럼 살다간 남사당의 혼

  • 입력 2003년 8월 22일 17시 46분


코멘트
소설 ‘바우덕이’에서 작가는 한세기반 전 경기 충청지역을 무대로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여자 재인의 굴곡진 삶을 굿판이라는 형식으로 엮어낸다. 안성 남사당패의 줄타기 공연.
소설 ‘바우덕이’에서 작가는 한세기반 전 경기 충청지역을 무대로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여자 재인의 굴곡진 삶을 굿판이라는 형식으로 엮어낸다. 안성 남사당패의 줄타기 공연.
◇바우덕이/이재운 지음/336쪽 9000원 글로세움

‘안성 청룡 바우덕이/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안성 청룡 바우덕이/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안성 청룡 바우덕이/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안성 민요)

해마다 9월, 경기 안성시에서는 ‘한국 대중 연예인의 효시’ 바우덕이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에서 온갖 기예를 자랑하며 폭풍과 같은 ‘팬덤(Fandom)’을 일으켰던 철종 고종 대의 재인.

300여만권이 판매된 ‘소설 토정비결’(1992)의 작가가 한세기반 전의 이 예인을 새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여자로서는 전무후무하게 남사당패 꼭두쇠(우두머리)가 된 바우덕이는 경복궁 복원공사장에서 공연한 뒤 대원군에게서 옥관자를 하사받지만, 폐병에 걸려 스물셋의 짧은 생으로 하직한다. 93년 초연된 연극 ‘남사당의 하늘’(윤대성 작)도 그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인 ‘나’. 바우덕이의 일생을 소설로 복원하기 위해 안성을 찾지만, 자료가 적어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무당을 불러 ‘바우덕이 굿’을 한다. 바우덕이의 부모, 그를 사랑한 남자들, 흥선대원군, 김삿갓 등등의 혼령이 차례로 불려나와 화려하고도 신산스러웠던 한 삶을 증언한다.

책의 대부분을 이루는 굿판의 묘사를 기자는 두 번 거듭 읽었다. 처음에는 버려지다시피 길러져 시냇가 바닥에 묻힌 삶의 줄기가 흥미진진해서였다. 두 번째는, 불려나온 각각의 혼령들의 증언이 미묘하게 달라 사뭇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 아버지 김중수는 꼭두쇠 윤치덕에게 아이를 맡기며 ‘금가락지’를 주었다고 회상한다. 뒤에 불려나온 윤치덕의 혼령은 ‘은가락지’를 받았다고 한다. 책의 정점을 이루는 혼례와 죽음 장면조차 부부의 증언이 엇갈린다. 바우덕이 혼령의 회상을 따르자면, 그는 자신의 병구완을 해 준 이경화와 죽음 직전에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날 밤, 이경화의 품 안에서 그는 자는 듯 삶을 접는다. 그러나 이경화의 증언에서 혼례는 없다. 어느 날 헉 하고 숨 한번 몰아쉬더니 숨을 놓았을 뿐이다.

작가가 굿판이라는 무속 또는 연희 양식에 주목한 것은, 굿을 통해 지역민들의 잠재의식 속 바우덕이를 되살려보고자 했던 스스로의 시도에 착안한 일이었을 듯하다. 그런데 이 시도가 소설의 ‘내러티브’ 면에서 주목할 만한 효과를 낳는다. 개개의 인물은 여러 사람의 증언을 거치면서 비로소 살아 숨쉬며 인간의 체취를 풍긴다. 증언들은 때로 엇갈리고 모순된다. 삶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진실’은 과연 얼마나 소용이 있는가.

마른 들꽃을 꺾어다 불단에 바친 뒤 바우덕이는 이경화에게 말한다. 자기가 죽거든 시냇물이 흐르는 개울에 묻어달라고. 물이 저들끼리 흘러가는 걸 구경할 수 있도록, 자신도 저승으로 잘 흘러가도록. 바우덕이 혼령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경화는 다르게 회상한다. 어느 봄날, 냇가를 바라보며 바우덕이는 말한다. 버들강아지 사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라도 들어야지 산언덕에 묻히면 심심해서 어떡하나. 바우덕이가 이승을 떠난 뒤 이경화의 귀에는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바우덕이의 속삭임으로 들린다. 두 사람의 말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물이 저들끼리 흘러가듯, 사람의 말 또한 저들끼리 각기 흘러가는 것 아닌가. 게다가 두 회상 모두 아름답지 않은가.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