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근대초극론:일본 근대사상사에 대한 시각'

  • 입력 2003년 6월 13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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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일본의 우파 인사들. 저자는 일본의 근대성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일중(日中)연대를 통해 ‘임금노예제’를 지양한 ‘동아신체제’를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일본의 우파 인사들. 저자는 일본의 근대성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일중(日中)연대를 통해 ‘임금노예제’를 지양한 ‘동아신체제’를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근대초극론:일본 근대사상사에 대한 시각/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지음 김항 옮김/263쪽 1만2000원 민음사

한국에서도 근대성의 문제는 한창 진행 중이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근대성 논의의 중요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일본 논객의 저서다.

저자인 히로마쓰 와타루(1933∼1994)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복원적 해석을 통해 근대적 앎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려고 한다. 1974∼75년 월간지 ‘류도(流動)’에 10회에 걸쳐 연재된 ‘근대의 초극과 일본적 유구(遺構·남겨진 과제)’ 또한 이런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책은 이를 한 권으로 묶어 낸 것이다.

옮긴이의 설명처럼 “좁게는 1942년 문예지인 ‘분가쿠카이(文學界)’에서 개최된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대한 해설이고 넓게는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할 때까지의 일본 지성사”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로망주의(romanticism)와 교토학파가 제시하고 있는 근대론 문제 및 그 극복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논의의 중점은 역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를 중심으로 한 교토학파의 ‘인간학’과 ‘세계사의 철학’에 대한 분석과 비평, 그리고 비판적 계승에 있다.

그러나 이 비판적 계승이라는 점은 저자의 철학적 사고가 지니는 의의지만 동시에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고야마 이와오(高山岩男)의 ‘대동아 공영권’에 관한 저자의 분석과 평가가 그렇다. 짧게 설명을 더하자면 훗날 저자는 신문지상에 일중(日中)연대를 통한 ‘동아신체제’ 수립을 주창했고 이로 인해 전전(戰前) ‘대동아공영권’ 발상의 재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실상 저자와 기타로의 학문적 배경에는 신칸트학파와 현상학, 그리고 불교사상의 영향과 관심 등 적잖은 공통점이 있으며 이것이 이런 비난의 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야마모토 고이치(山本耕一)는 “‘임금노예제’를 방치한 ‘대동아공영권’제와 ‘임금노예제’의 지양을 필수 전제로 하는 ‘동아신체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이 책을 통해 전쟁 이데올로기로 전락, 봉인되고 만 ‘근대의 초극’이라는 테마를 다시금 학문적 철학적 사고의 지평 위에 재검토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자칫 불투명한 회색분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또한 일본 내셔널리즘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뜨뜻미지근한 불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구해야 할 바는 다름 아닌 우리의 근대성이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가에 대한 반성적 계기일 것이다. 근대적 제반 양상을 협소한 흑백논리로 결론지으려는 성급한 마음을 접어 두고 일본 쇼와사(昭和史)에 드러난 근대성 논의의 질곡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에 강제 이식된 근대성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다듬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언어적 영롱함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작업을 완수한 옮긴이의 균형감각에도 주목하고 싶다. 역주의 노고가 더 크게 활용될 수 있도록 공구서(工具書)를 더 소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끊임없이 이어질 ‘근대’라는 실제성(actuality) 논의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에 큰 기대를 갖는다.

김태호 일본 도쿄대 철학센터(UTCP) 특임연구원 kimizu39@mp.0038.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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