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파킨슨병 치료제 과다사용땐…

  • 입력 2003년 5월 18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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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햄릿은 고뇌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바로 그것이 문제로다.’

신경과 의사들 역시 이런 종류의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파킨슨병은 운동 기능 조절을 담당하는 기저핵이란 부분에 도파민 신경전달물질이 떨어져 생기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운동 조절이 안되므로 동작이 서서히 느려진다. 두 손은 덜덜 떨게 되며 근육이 점차 굳어져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 진다. 병이 진행될수록 침상에 누워 꼼짝 못하게 되며 결국 속절없이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1970년대에 ‘엘-도파’라는 기적의 약이 개발되었다. 엘-도파는 부족한 기저핵의 도파민을 보충해 주므로 파킨슨병 증세를 개선시킨다.

그러나 엘-도파가 우리에게 준 기쁨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엘-도파는 부족한 도파민을 보충해 주지만 파킨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한다. 즉 병이 진행됨에 따라 기저핵의 도파민 부족증이 점차 심해지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려면 엘-도파의 양을 점점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오랫동안 엘-도파를 사용하면 도파민 수용체의 성질이 변하여 밖으로부터 공급되는 도파민 양에 기저핵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엘-도파를 투여하면 갑자기 도파민 과다 상태가 되므로 근육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왕성해진다. 따라서 환자들은 손발을 마구 내두르는 ‘무도병’ 증세를 나타낸다. 물론 엘-도파 사용을 중지하면 무도병 증세는 없어지지만 약 투여를 중단한 중증 파킨슨병 환자는 마치 뜰에 쌓아둔 장작개비처럼 뻣뻣해진다.

이뿐 아니다. 기저핵의 도파민은 운동조절 기능에 관여하지만 뇌의 다른 부위에서는 우리의 정신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컨대 뇌에서 도파민이 과다해지면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나타난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엘-도파를 오래 사용하면 도파민 과다 상태가 되므로 환각과 같은 정신 이상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결국 신경과 의사는 파킨슨병 증세, 무도병 그리고 정신 이상 증세를 서로 저울질하며 치료해야 하는 햄릿과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요즘 무도병을 일으키지 않는 파킨슨병 치료약, 그리고 도파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신 질환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도 엘-도파만큼 잘 듣는 파킨슨병 약은 없다. 파킨슨병 환자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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