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10·끝>노인진료 시스템 고치자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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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중풍과 치매 증세를 보이는 81세의 이수경씨(가명·여)는 한두 달 간격으로 병원을 옮긴다. 지방의 노인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원측의 권유에 따라 다른 곳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고 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역시 같은 증세인 91세의 정성철씨(가명)도 이씨와 같은 병원에서 1년째 입원 중이다. 정씨 가족은 잠시 다른 곳으로 모시라는 병원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냥 머물고 있다. 병원들이 노인 환자를 잠시 내보냈다가 다시 받으려는 데는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노인을 내쫓는 의료제도=노인질병을 주로 치료하는 노인전문병원은 전국에 59곳. 입원 중인 환자는 대부분 중풍 치매 같은 중증 질병이나 관절염 요통 좌골신경통 고혈압등에 시달린다.

노인성 질병은 지속적인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간의 입원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노인이 3개월 이상 입원하면 병원은 난감해한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중 노인의료비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과잉진료라며 진료비를 삭감하기 때문이다.

치매와 뇌중풍으로 입원한 한 노인의 사례. 진찰료 약값 병실료가 한달에 약 75만원으로 본인 부담을 제외하면 병원의 3개월치 진료비 청구액이 180만원가량 된다. 여기까지는 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입원기간이 3개월을 넘으면 20% 이상 삭감당한다. 입원기간이 6개월, 1년으로 늘면 늘수록 삭감액은 커진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고도 진료비를 다 받지 못하는 것. A병원은 지난해 한해만 4억원, B병원은 2억원 이상을 삭감당했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는 다른 시설에 가서 잠시 지내다 다시 오라고 부탁하는 일이 잦다. 병원 사정을 이해하는 환자와 가족은 불편을 감수하며 잠시 퇴원하지만 만약 이들이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내쫓을 수 없으므로 병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경북 경산노인전문병원 이상원(李相원) 신경과장은 “장기치료가 필요한 노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3개월 이상 입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진료비를 삭감하는 것은 노인복지 향상을 위해 정부가 노인전문병원의 설립을 적극 권장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족한 요양시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8, 9명은 노인성 만성질환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목욕 세수 양치질과 옷 갈아입기, 식사를 혼자서 하기가 힘들어 요양시설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65세 이상 노인의 20.9%(78만8000여명)로 추정된다.

보건사회연구원 선우덕(鮮于悳) 책임연구원은 “여성의 취업이 늘고 자녀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족이 노인을 돌보기 힘든 데다 치매나 중풍같이 중증 질병에 걸린 노인을 가정에만 맡길 수 없으므로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집안에 치매 환자 한 명이 있으면 온 가족의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경우 학업성적도 떨어지는 등 피해를 보게 돼 선진국의 경우 노인 환자를 요양시설로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보호를 받는 노인은 지난해 말 현재 2만2518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0.5%에 불과하다. 호주와 독일(각 6.8%) 프랑스(6.5%) 영국(5.1%)보다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노인 의료를 담당할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복합적인 노인성 질환을 치료할 노인의학 전문의나 노인전문 간호사를 양성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 대한노인병학회나 임상노인병학회에서 노인병 연수과정을 자체 운영하지만 임상 시설과 교육의 전문성이 미흡하다.

보건복지부 장병원(張炳元) 노인보건과장은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맞춰 대한의사협회 및 병원협회와 함께 노인의학전문의와 노인전문간호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간병인력 양성 시급=병원과 요양시설에서 노인을 돌보는 간병 인력은 정부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생활보조원 가정봉사원 가정도우미 간병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간병인력은 기관마다 교육과정이 다르고 체계적이지 못해 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다. 노인을 돕는 간병인력은 10만명가량이 필요하지만 정부에서 지원하는 가정봉사원은 현재 6343명뿐이다. 나머지 간병인은 직업소개소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소개되고 있다.

강남대 조소영(趙素英·사회복지학) 교수는 “노인간병인의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므로 간병인력의 질과 자격요건을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케어 매니저(care manager)로서 간병인을 관리하며 일본과 독일은 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아닌 개호사(介護士) 또는 노인전문수발사가 간병인 관리역할을 맡고 있다.


▼제네바 ‘발 플레리 요양원'▼

“이 운동기구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 좀 더 생각을 해야겠는 걸.”

스위스 제네바의 ‘발 플레리 요양원’. 엘리자베스 앤마크(여)는 두 손으로 러닝머신을 잡고 일어선 80대 남자 노인에게 힘을 내서 천천히 걸어보라고 권유했다.

그녀는 10년째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하루에 15∼30분 정도 운동을 시켜 노인 스스로 몸에 자신감을 갖도록 돕는데 주력한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노인이 물리치료를 통해 걷기 시작하면 다른 노인이 자극을 받아 재활에 적극성을 보인다”고 앤마크씨는 말했다.

이 요양원은 제네바 시내 50여개의 노인요양시설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950년에 문을 열었다. 노인 270여명을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270여명의 직원이 담당한다. 1대1로 보호하는 셈이다.

원칙적으로 65세 이상의 노인만 이용할 수 있지만 장애가 심하면 이보다 나이가 적은 50대와 60대도 받아준다. 입소비의 절반 가량은 이용자가 개별 부담하지만 소득이 적을 경우 비용을 할인해 준다.

입소 신청을 하면 요양원은 노인의 운동능력을 검사해 8등급으로 구분한다. 식사 세면 화장실 이용 등을 2시간 동안 관찰한 뒤 혼자서 활동이 가능한 1, 2등급은 제외한다. 가장 몸이 불편한 8등급은 우선 병원으로 보낸 뒤 치료 경과를 봐서 결정한다.

식단은 개인의 연령과 건강을 감안해 매끼 7가지 종류를 제공한다. 식당 테이블에는 개인의 고유번호를 붙였다. 노인은 변화를 싫어해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도록 배려하는 것. 몸을 움직이기 힘들면 침대에서 간호조무사가 식사를 돕는다.

입소자는 자신의 불만 사항을 제네바요양의료시설협회(FEGENS)에 신고한다. 시설이 낡았거나 직원이 친절하지 않은 경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 등…. 몸이 불편하거나 아파서 서러움을 느끼는데 직원이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이 협회는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조사를 벌인 뒤 요양원과 이용자 양측에게 설명한다. 조사 결과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주 정부가 지원비를 삭감한다.

이 협회에서만 요양시설을 감독하는 것이 아니다. 퇴직자협회, 주 정부, 연금감사재단, 연방정부의사협회가 지원비를 제대로 쓰고 운영을 하는지 정기적으로 조사한다.

이 요양원의 에릭 마티 원장은 “사실상 매일 매일 감사를 받는 셈”이라며 “노인의 욕구를 100% 맞춰 주려면 상당히 힘이 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제네바=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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