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LG용병 테런스 블랙 “딸과 매일 국제전화…”

  • 입력 2003년 1월 19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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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선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강한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LG세이커스의 신인 외국인선수 테런스 블랙.그는 외국인선수중에서도 으뜸 ‘범생이’로 꼽힌다. 강병기기자
“스포츠에선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강한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LG세이커스의 신인 외국인선수 테런스 블랙.그는 외국인선수중에서도 으뜸 ‘범생이’로 꼽힌다. 강병기기자
프로농구 LG세이커스의 외국인선수 테런스 블랙(25)은 국내에서 뛰는 용병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범생이’로 꼽힌다. 게임중 서로 부딪쳐 넘어졌을 때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으레 그다.

아직 스키장 한 번 가본 적도 없다. 관심은 오로지 농구뿐. 쉬는 날에도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다.

숙소에 앉아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전부. 인터넷으로 고향인 미국 위스콘신주의 밀워키 신문을 보는 것도 중요한 일과.

한국에 와서 가본 곳은 이태원, 코엑스 쇼핑몰, 롯데월드 정도가 전부. 아직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고향에 다섯살짜리 딸과 ‘애인’이 있다.

1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LG 숙소에서 만난 블랙은 시종 말이 없었다. 목소리도 너무 작아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했다.

외국인 선수 특유의 건들거리거나 으스대는 모습도 없었다.

―딸이 보고 싶을텐데…

“그렇다. 그래서 날마다 전화를 한다. 유치원은 잘 다녀 왔는지, 오늘은 뭘 배웠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뭘 먹고 싶은 지 물어본다. 기회가 닿으면 가족을 한국에 초청해 내가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통화료가 많이 나오겠다.

“처음 한달은 300달러 가까이 나왔다. 요즘엔 할 말만 하고 빨리 끊어 100달러 조금 넘는다.”

―돈을 모아 어디에 쓸 건가.(국내 프로농구 용병들은 한 달에 1만달러씩 7개월 정도 계약하는 게 보통.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면 보너스도 받는다)

“학교 선생님이나 농구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뛰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벽이 워낙 높아 될지 모르겠다. 시즌이 끝나면 대학(댈러스 베일러대학)에서 전공한 교육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 미국에서 농구코치가 되려면 교육학이나 심리학 공부는 필수다.”

■한국은 낯설지만 농구는 다 똑같아

블랙은 포드로서는 키(192.5㎝)가 크지 않고 몸집(99㎏)도 작은 편. 그래서 힘좋은 동양 오리온스의 마르커스 힉스나 SK빅스의 조니 맥도웰을 막기가 가장 힘들다.

또 올 시즌 처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본 적이 없다. 지난 시즌 이탈리아에선 한 경기 당 20∼25분이 고작. 그러나 요즘은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35분 가까이 뛰고 있다.

―한국농구의 특징은 뭐라고 보나.

“엄청나게 빠르고 많이 뛴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부담스럽다.”

―한국선수중 인상적인 선수를 꼽는다면…

“서장훈 강동희 김승현…”

―서장훈은 NBA에서도 통할까.

“글쎄, 어려운 질문이다. 큰 선수치고는 슈팅력이 참 좋다. 그러나 발이 너무 느리다. 이 점을 보완하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같은 팀의 가드 강동희는 어떤가.

“패스 능력과 시야는 NBA급이다. 그래서 난 그를 매직 존슨에 빗대 ‘살찐 매직(Fat Magic)’이라고 부른다. 호흡도 제일 잘 맞는다.”

―올 시즌 NBA에서 뛰는 중국의 야오밍(휴스턴 로케츠)은 어떤가.

“TV를 통해 그의 플레이를 봤다. NBA에 그렇게 빨리 적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블랙은 김치를 몇 번 먹어 봤지만 너무 매워 포기했다. 불고기 갈비는 그래도 먹을 만 하다. 지방 경기땐 햄버거로 때우거나 인근 호텔에서 해결한다.

쉬는 날엔 가끔 단짝인 삼성의 브래포드, KCC의 보이드, 같은 팀의 페리맨과 이태원에서 만난다. 브래포드와는 대학시절부터 친구 사이.

■운동은 타고난 것 50% 정신력 50%

블랙은 서전트 점프가 40인치(101.6㎝)나 된다. 덩크 슛쯤은 식은 죽 먹기. 18일 현재 야투성공률 6위(58.8%),블록 슛 5위(2.22),스틸 5위(1.94개),득점 12위(18.94),리바운드 10위(10.47),어시스트 13위(3.64).

“자유투 성공률은 얼마나 되는가.”

“한 62%쯤…”

“잘 안들어가는 편이 아닌가.”

“글쎄, 리듬이 깨져서 그런 것 같다. 한국 선수들은 참 잘 넣는다. 그래도 난 NBA 최고센터라는 샤킬 오닐보다는 훨씬 낫다. 그렇게 돈을 많이 받으면서 자유투를 못넣는다는 게 이해가 안간다.”

“NBA선수중에 누굴 좋아하나.”

“케빈 가넷(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이다.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데다 농구에 대한 열정 등이 마음에 든다. 스포츠란 결국 정신력이 중요하다.”

가톨릭 신자인 블랙은 경기 전 꼭 “부상 당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징크스도 있다. 구단 버스에 앉을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하고 게임을 앞두고 반드시 낮잠을 자야 하는 것 등이 그렇다.

심심하면 추리 소설을 읽거나 낼리의 ‘딜레마’라는 힙합노래를 흥얼 거린다.

“할 줄 아는 한국말은?”

“빨리 빨리, 예쁘다, 김치, 알았어…”

“한국에 와서 가장 충격받은 일은?”

“보신탕 먹는다는 애길 듣고 처음엔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의 차이로 이해한다.”

블랙은 매우 감성적이다. 기쁠 때도 곧잘 운다.

미국에서는 이길 때마다 단골 울보였다고. 그래서 강동희는 그를 ‘우리 아기’라고 부른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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