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응격/동방의 등불

  • 입력 2002년 2월 24일 18시 22분


이제 나흘 후면 3·1운동 83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날이 오면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로 널리 알려진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1861∼1941)가 떠오른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지도자다. 그는 또 1913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기탄잘리:범신론적 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이기도 하다. 그가 작시·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는 오늘날 인도의 국가가 돼 있다.

▷타고르는 조국 인도와 비슷한 시기에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랐다. 타고르는 한국을 소재로 한 시 두 편 ‘동방의 등불’과 ‘패자의 노래’를 남겼다. 이 중 ‘패자의 노래’는 육당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는 한국인을 위해 쓴 것이다. ‘동방의 등불’은 그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태로(李太魯)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송시다.

▷여기 1929년 4월2일자 동아일보에 주요한(朱耀翰) 역으로 게재됐던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소개한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마음에 두려움이 없고/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지식은 자유롭고/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이 시는 한국인이 일제 강점 하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나 한민족의 우수한 문화와 민족성을 ‘동방의 밝은 빛’으로 표현하여 코리아의 밝은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인도와 한국이 다같이 고난을 겪던 시절에 양국간의 정신적 유대를 공고하게 해준 이 시는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의 비전을 제시해 준다. 국내외적으로 혼돈스러운 요즘 이 시를 다시 들춰내 음미해 보는 것은, 그래도 희망의 불빛은 꺼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응격 객원논설위원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행정학 parkek@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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