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천연두

  • 입력 2001년 11월 7일 20시 22분


반세기 전만 해도 천연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번 돌면 걸린 사람 절반가량이 죽어나가는 데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도 얼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았다. 그러기에 호랑이나 오랑캐보다 더 무서운 게 천연두였다. 이 병의 원래 우리 이름인 ‘두창’은 놔두고 ‘마마’나 ‘손님’으로 높여 부른 것도 공포와 경외심의 발로일 게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한 해에만도 4만여명이 천연두에 걸렸다.

▷서양도 다르지 않았다. 천하무적 로마군을 궤멸시킨 게 바로 천연두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발을 디디면서 이 무서운 병도 함께 상륙했다. 멕시코의 아스텍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스페인 정복자가 아니라 천연두라고 한다. 코르테스의 집요한 공격에도 끄떡없다가 천연두로 2년 동안 350만명이 떼죽음하는 바람에 손을 들고 말았다는 얘기다. 20세기 들어서도 1967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1000만여명이 이 병에 걸려 200만명 이상이 죽었다니 요즘 에이즈 공포 정도가 아니었을 게다.

▷그렇게 무섭던 천연두도 결국 정복됐다. 젖을 짜면서 소의 질병인 우두에 걸렸던 여자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데 착안한 영국 외과의사 제너가 우두 고름으로 요즘으로 치면 백신을 만들어낸 게 그 효시다. 제너의 종두법은 19세기 말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을 수행해 일본에 간 지석영(池錫永)이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우두를 맞으면 소가 된다’며 사람들이 종두 주사를 피해 다니던 것도 이 무렵이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 3명이 걸린 것을 끝으로 천연두가 사라졌다. 세계에서도 1977년 소말리아 환자가 마지막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고 우리도 이즈음부터 백신접종을 중단했다. 그랬는데 요즘 다시 천연두 얘기가 나온다. 테러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탄저병 다음의 생화학테러는 천연두’라고 공언하는가 하면 프랑스는 백신 생산을 재개했다고 한다. 우리도 그저께 테러대책장관회의에서 천연두를 다시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다. 공포의 ‘불 주사’를 다시 맞게 되는가. 테러가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나 보다.

<최화경논설위원> bb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