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여성]메리츠증권 고유선 선임연구원

  • 입력 2001년 9월 19일 19시 37분


“무슨 일 하세요?”

“이코노미스트예요.”

“예?”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그게 도대체 뭘 하는 직업이냐’라는 의아한 표정의 되물음을 받는다. 이코노미스트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진 메리츠증권의 고유선 선임연구원(30·사진). 국내 증권사 소속으로는 단 한 명뿐인 여성 이코노미스트다.

 흔히 ‘애널리스트’로 통칭하는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들은 엄밀히 말해 3개 분야로 나눠진다. 각 산업의 동향 및 기업 실적을 분석하는 좁은 의미의 애널리스트, 종합주가지수를 예측하며 투자전략을 고민하는 스트래티지스트, 그리고 금리 환율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에 따라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이코노미스트가 그 것.

 섬세한 수치를 다루는 애널리스트나 스트래티지스트 중에는 여성 연구원들이 적지 않지만 미국 경제가 어떻고, 한국 경제 하반기 전망이 어떻고 하는 이 ‘따분한’ 분야에는 여성 연구원이 거의 없다.

“여자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죠. 연봉이나 각종 대우를 비교해 봐도 다른 직종에 비해 남녀 차별이 현저히 적은 편입니다.”

 그가 작성하는 자료를 투자 참고자료로 삼는 펀드매니저들이 막상 고 연구원을 만나면 “어, 여자분이셨어요?” 하고 놀라는 게 ‘별 다른 대접’인 정도다. 오직 돈과 성적만이 말하는 증권가에서 여성이 쓴 자료라고 폄훼할 이유가 없으며 반대로 ‘예쁘게’ 봐 줄 이유도 전혀 없기 때문.

 재미있는 사실은 고 연구원의 남편도 현대투신증권 소속의 이코노미스트라는 사실. 국내 단 하나뿐인 이코노미스트 부부인 셈이다. 그래서 동료들은 “아기를 낳으면 볼 만하겠어. 돌잔치 때 아기가 ‘경제성장률 하락과 실업률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데 돌잔치가 너무 화려한 것 아닙니까?’라고 반항하는 거 아냐?”라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그러나 말이 ‘이코노미스트 부부’이지 실제 두 이코노미스트의 결혼은 직업상 그다지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생명은 경제를 분석하는 아이디어인데 서로 아이디어를 ‘도용’당할까봐 부부간에 경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 그는 올해 3월 미국 신경제분야와 구경제분야의 경기 회복 속도 차이를 예상하는 보고서를 내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고 연구원 스스로도 그때를 이코노미스트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로 기억한다.

“내가 낸 자료를 읽은 투자자들이 ‘도움이 됐다’며 격려해 주면 가장 즐겁죠. 경제 전망이란 것이 항상 맞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해 ‘고유선, 가장 객관적이고 신뢰감 있는 자료를 쓰는 이코노미스트’라는 평을 듣는게 꿈입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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