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신현준/홍대앞에 독립예술이 돌아왔다

  • 입력 2001년 9월 12일 18시 32분


최근에 지방마다 이런저런 축제성 행사가 많이 열린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에 나타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최 자체에 의미를 두는 차원을 넘어 행사의 ‘질’을 짚어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대부분의 행사들은 ‘관이 주도하는 위민잔치’ 이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 중에는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기획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인디(indie)’나 ‘독립’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인디 문화' 여러 갈래로 확산▼

‘독립’ ‘인디’라는 단어가 시중에 널리 회자된 지 5∼6년은 지난 것 같다. 그동안 ‘인디문화’가 확고하게 뿌리내렸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독립예술제’라는 이름의 행사가 4회째를 맞이하고 있으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대중음악계의 예를 봐도 크라잉 넛, 노 브레인, 델리 스파이스 등은 ‘주류’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미 스타로 자리잡은 자우림도 한때는 인디문화의 언저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7일부터 서울의 홍익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제4회 독립예술제’는 고성방가, 내부공사, 암중모색, 이구동성, 중구난방이라는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고성방가는 음악, 내부공사는 시각미술, 암중모색은 영화와 비디오, 이구동성은 공연예술, 중구난방은 거리예술을 말한다. 이미 축제를 구경한 사람이면 느꼈겠지만 이제 인디문화는 여러 갈래로 확산되고 있고 해를 거듭할수록 기획과 실무에 안정감을 더해가고 있다. 행사장을 찾아간 사람들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예전의 모습과 달리 행사를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로 변모하고 있다.

이번 ‘독립예술제’는 ‘홍대 앞’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홍대 앞은 오렌지족의 유흥장소뿐만 아니라 라이브 클럽, 미술가의 작업실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공존하면서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곳으로 1990년대 초중반 이후 인디문화의 산실이 되어왔다. 매스미디어가 조장한 인디문화의 거품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독립예술제’가 홍대 앞으로 돌아온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차분히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가짐의 반영으로 보인다.

원론적이지만 ‘인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짚어 보자. 이 용어가 ‘인디 레이블’에서 유래한 경제적 개념이며 거대 기업조직이 아닌 ‘자영업’으로 운영되는 문화생산의 단위를 말한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영미권 등 서양 사회에서는 1970년대 후반 이후 ‘너 스스로 해라(Do it yourself)’는 윤리적 개념을 파생시켰다는 점도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이들 나라에서 ‘인디문화’는 20여년 동안 주류의 대중문화를 자극하고 견제하면서 나름대로 존재의 근거를 확보해 왔다.

물론 ‘인디문화’가 과연 상업적 대중문화로부터 독립적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일반적 문제 이상의 문제가 존재한다.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회’에서는 주류 세계에 진입한 사람들이 ‘문화적 주체’가 되기는 힘들다. 짬짬이 생기는 ‘여가시간’은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거나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서 ‘쉬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인디’든 뭐든 문화생산의 현장을 찾는 일은 고된 행위일 뿐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교육제도, 주택제도, 가족제도 등도 젊은이들에게 ‘자립’의 윤리를 심어주지는 못한다.

▼마음의 혁명으로 이어졌으면▼

그렇다면 ‘인디문화’가 잘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는 항의가 빗발칠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이런 ‘급진적’ 개혁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전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독립예술제’를 포함한 ‘인디문화’는 당분간 ‘그들만의 축제’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들’은 문화적 생산의 욕구가 왕성한 존재들이고 축제란 원래 힘든 일은 잊어버리고 재미있게 즐기려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즐겁게 노는 와중에 ‘생각’도 하고, ‘개혁’도 하고, 그게 ‘마음의 혁명’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신현준(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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