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끄러운 '언론탄압 감시대상국'

  • 입력 2001년 9월 7일 18시 42분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한국을 ‘언론자유 탄압 감시대상국(Watch List)’에 포함시킨 것은 국가적 수모나 다름없다.

한국의 언론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내한한 IPI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은 그제 세계신문협회(WAN) 로저 파킨슨 회장과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1년에 두 차례씩 한국의 언론상황을 조사해 감시대상국에 계속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향후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 및 경영권 박탈에 대한 우려까지 표명했다.

‘언론자유 탄압 감시대상국’ 제도는 언론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된 국가를 지정해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를 통해 부정적인 언론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 스리랑카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들어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으로는 처음으로 감시대상국에 들어 나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IPI의 결정은 언론사 세무조사로 시작된 최근의 언론 상황이 언론개혁 작업이 아닌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언론탄압이라는 것을 국제사회가 공인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걱정이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언론자유가 신장됐다고 자랑해온 ‘국민의 정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나라가 언론 후진국이라는 오명까지 받아야 하는지 참담하기 그지없다.

IPI의 감시대상국 지정은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IPI는 5월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중재역할을 제안하며 언론 문제가 민주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을 감시대상국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IPI에 대해 ‘내정간섭’이라며 발끈했고, 이후 계속된 국제언론단체와 언론매체의 지적에 대해서도 비난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치욕적인 상황을 맞은 것이다.

정부는 이번 IPI, WAN의 방한조사와 회견내용에 대해서도 편파적이며 한국정부 흠집내기라고 비난했을 뿐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성숙한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 이 같은 적대적 대응이 오히려 상황을 더 꼬이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부는 이들이 왜 지금 한국의 언론 현실을 ‘비참한 상황(horrible situation)’으로까지 표현하는지 돌아보고 귀기울일 것은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하루빨리 ‘감시대상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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