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이버공간과 공동체

  • 입력 2001년 4월 27일 19시 27분


◇사이버공간 인간관계는 어떨까

사이버공간과 공동체

마크 스미스·피터 콜록 편저 조동기 옮김

579쪽 1만8000원 나남출판

“내가 존재하는 한 나는 내 신체다.”

1, 2차 대전이라는 ‘기막힌’ 인간의 잔혹극을 경험한 사르트르가 그의 저서인 ‘존재와 무’에서 인간의 본질에 회의하며 규정했던 인간은 바로 신체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었다.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져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신체를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1980년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날 무렵 세상에 등장한 사이버공간 속의 ‘나’는 신체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질 신체가 없기에 무책임한 언어를 쏟아낸다. ‘익명성’을 무기로 무차별의 폭력을 휘두르며 수시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이들이야말로 전통과 가치관에 얽매일 신체도 없이 사이버공간에 던져진 ‘자유롭도록 축복 받은’ 실존인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공간의 나’가 그러하듯이 ‘사이버공간 속의 나’ 역시 타인 및 사회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이버공간 속의 나’는 ‘현실공간의 나’로부터 이어지는 연관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E메일 주소와 ID와 아바타 등 ‘사이버공간 속의 나’가 가진 ‘기호’는 모두 ‘현실공간의 나’로부터 비롯된 단서들이다.

이런 단서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이렇게 형성된 ‘나’는 사이버공간에서 다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의 ‘나’와 관계를 맺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타인’은 다시 현실공간의 또 다른 ‘나’에게 그 고통과 비애를 전달한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두 편저자를 비롯해 이 책의 필자들이 경계하는 것은 사이버공간과 현실공간의 이분법적 구분이다. 사이버공간이건 현실공간이건 인간의 문제는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개인의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환경에서의 정체성, 현상적으로 무정부적인 환경에서의 사회질서와 사회통제, 집합행동의 기초로서의 공동체, 그리고 성차별, 권력, 경제윤리, 인종차별….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사이버공간과 현실공간이 공유하는 것들이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성별, 연령, 사회경제적 지위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특성을 지닌 채 만들어지는 사이버공간이 현실공간과 동떨어진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무선인터넷까지 확산되며 사이버공간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공존하는 시대. 사이버공간이 현실공간의 존재 없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현실공간 역시 사이버공간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현실공간의 인간 관계 및 공동체는 이미 사이버공간 없이 온전한 유지가 불가능하다.

원본(원제:박애―새로운 유토피아를 위하여)이 발간된 지 2년 밖에 되지 않는 이 책에서 가끔 진부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이버공간의 현기증 나는 확산 속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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