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하루>의 주연 고소영 이성재

  • 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25분


인형처럼 예쁘고 도도한 이미지의 고소영이 임산부 역할을? 그것도 태어나 하루 밖에 살 수 없는 무뇌아를 낳기로 결심한, 사연많은 엄마 역할을 맡다니.

‘하루’에서 작심하고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고소영은 “나는 그런 말 싫다. 이전 이미지와도 크게 달라진 것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 때문에 우는 장면이 부각되니까 그렇지, ‘하루’의 진원도 순종적인 주부는 아니지 않은가? ‘연풍연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러브’에서 맡은 역할도 콧대높은 여자가 아니었는데, 외모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자꾸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의 중심이 비극적 상황에 처한 엄마와 태아에게 주어진 탓에 남편 역할은 자칫 밋밋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성재는 수더분하고 속깊은 남편 역할을 주어진 배역 이상으로 잘 살려냈다.

“죽을 게 뻔한 무뇌아를 중절수술하지 않고 출산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영화의 소재는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의 하나였고, 촬영할 때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빨리 알려야 한다는 조바심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

두 딸의 아빠이기도 한 이성재는 “실제로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영화에서와 같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겠죠…. 하지만 영화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게만이라도 해주고 싶다는 의지를 아내가 갖고 있다면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불임부부 사이에 모처럼 생긴 아이가 무뇌아라는 설정 탓에 이 영화는 ‘이래도 안울래?’식의 신파로 한없이 흐를 수 있었지만, 두 배우는 절제된 감정을 보여준다. “관객을 좀 더 울렸어야 되는 것 아닌가”하고 묻자 고소영은 “내가 거기서 무너져 엉엉 울어버리는 것보다 절제하는 편이 더 진한 슬픔을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루’의 진원은 임신 초기에 아이의 운명을 알게 되기 때문에 아마 혼자 많은 다짐을 했을 것이고, 영화로 보여주지 않은 장면에서 더 많이 아프고 울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성을 갖고 연기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성재 역시 “눈물보다 배우의 감정,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부부가 죽은 아이의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감상적일 것같아 찍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루’의 부부가 되어 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통에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다는 두 사람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를 본 관객들이 따뜻한 기분이 되어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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