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법대출 금고에 공적자금 1조원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45분


경남 창원에 본거지를 둔 성원토건그룹의 거액 불법대출사건은 그동안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사후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성필(金聖弼) 전 성원토건그룹회장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한길종금에서 4300억원을 불법 대출받았는데도 정부는 책임추궁은커녕 한길종금에 1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길종금은 98년 8월부터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받고도 파산을 면치 못했다. 국민의 혈세 1조원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동안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예금보험공사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실 등은 공적자금 감시의 책임문제를 놓고 떠넘기기를 계속하다 뒤늦게 내년부터 재경부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설치키로 했으니 말이다. 그동안 국민만 당한 꼴이다.

검찰은 엊그제 김 전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나 동방금고 열린금고 불법대출 사건과 마찬가지로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김 전회장이 97년 3월 한길종금을 인수한 뒤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 98년 5월까지 74차례에 걸쳐 43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도 금융감독원이 정말 이를 몰랐겠느냐 하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98년 1월 정부의 부실 종금사 정리방침에도 불구하고 한길종금은 버젓이 살아남아 한동안 성원토건그룹의 자금줄로 이용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김 전회장이 불법대출금 중 일부를 한길종금 증자에 사용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었다고 하지만 금감원이 그같은 편법을 모르고 넘어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당연히 금감원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검찰도 불법대출금 가운데 사용처가 불분명한 100억원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급성장한 성원토건그룹이 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자금난에 빠지면서 계열사들이 잇따라 퇴출위기에 몰렸던 점에 비추어 그룹 차원에서 정관계(政官界)에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은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한길종금에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집행한 과정을 추적해 정관계의 비호의혹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계속될 공적자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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