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나의 삶은 투쟁이다" 신갈나무의 외침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신갈나무 투쟁기' 차윤정·전승훈 지음/지성사 펴냄▼

나는 벌써 몇 년째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신갈나무의 열매인 도토리에 알을 낳는 거위벌레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주둥이가 거위 목처럼 긴 딱정벌레의 일종인 거위벌레 암컷들은 도토리에 알을 낳은 후 그 도토리가 달려 있는 가지를 입으로 잘라 땅 위에 떨어뜨린다. 그래서 한여름 신갈나무 그늘에는 마치 누군가 톱으로 끊어낸 듯한 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작은 딱정벌레에게 자기 몸통만큼이나 굵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건만 그들은 마치 종교의식이라도 치르듯 참으로 경건하게 자른다. 필경 자식을 위해 하는 일이 틀림없을 터이나 왜 그런 수고스런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작업 역시 여간 수고스런 일이 아니다.

신갈나무를 이용해먹는 동물이 어디 거위벌레뿐이랴. 여름 내내 이파리를 갉아먹는 온갖 초식곤충들로부터 흙 속으로 뚫고 들어가 어린 뿌리를 파먹는 땅강아지까지 실로 엄청나게 다양한 곤충들이 신갈나무에 빌붙어 산다. 햇빛을 받아먹기 위해 얼마 안되는 숲 속의 공간을 두고 다른 식물들과 자리다툼을 벌여야 하는가 하면 조금 살만하다 싶으면 이 같은 곤충들의 공격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신갈나무의 삶은 차라리 투쟁이다.

이같은 ‘신갈나무 투쟁기’(지성사)를 나무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우리 학자 두 사람이 마치 옛날얘기처럼 구수하게 들려준다. 재미로 보나 학문적인 수준으로 보나 손색이 없는 알이 꽉 찬 책이다. 신갈나무의 투쟁사와 함께 온갖 숲속 동식물들이 사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지금 우리 인류는 전례 없는 환경위기를 겪고 있다. 이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조차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수 만 년 또는 수억년에 걸쳐 진화한 종들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지구의 역사에서 적어도 다섯 번에 걸쳐 벌어졌던 대절멸사건들과 비교하여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제6의 대절멸사건’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지구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나무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수요일은 식목일이다. 그러나 농림부는 올해부터 나무심기 기간을 예년보다 20일이나 앞당긴 3월 1일부터 시작했다. 최근 지구온난화현상에 따라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오르며 겨우내 얼었던 땅도 일찍 녹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1960년대 이래 줄곧 퍽 많은 나무들을 심어왔다. 그러나 나무는 심는 것 못지 않게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신갈나무 투쟁기’로 정성스레 심은 내 나무가 걸어갈 삶의 역정을 미리 짚어보자. 자식의 앞날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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