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영암 월출산]고개들면 구름바다… 정상엔 둥근 달

  • 입력 1998년 2월 5일 07시 19분


황토를 ‘핏빛’이라 노래한 시인의 말은 옳다. 전남 광주에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붉은 산하. 나주 영암평야다. 그 한가운데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돌산, 월출산.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해남 두륜산을 빼면 둘레 1백리안에 돌출이라곤 없는 평야 한 가운데 떠억 버티고 선 돌 덩어리. 월출산 삼각형 꼭지 봉우리에 하늘을 뚫고 두둥실 떠오르는 쟁반같은 둥근달은 ‘달하 높이곰 돋으샤 어그야 머리곰 비추오시라’던 백제 여인의 고운 얼굴 같다. 11일은 정월 대보름날. 고단한 서울을 떠나 월출산의 눈부신 달빛을 흠뻑 맞으며 산길을 걸어 보면 어떨까. 그 먼 옛날 일본 아소카문화 원조인 백제의 왕인박사와 풍수지리 시조 도선국사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가. 산행 시작은 천황사쪽(5.5㎞)과 도갑사쪽(8.5㎞)의 둘로 나뉜다. 정상 천황봉에 이르는 최단 코스는 천황사쪽. 가파른 경사를 20여분 오르니 작고 단아한 암자 천황사가 보인다. 40여분 올라 가쁜 숨을 고르니 바람폭포. 바람이 너무 세 폭포물이 사선으로 날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폭포가 고드름이 돼 비스듬히 얼었다. 하늘위로는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구름다리. 해발 1백20m, 살금살금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웃음섞인 비명소리가 언 공기를 간지럽힌다. 기암괴석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구정봉에서 정상인 천황봉을 거치는 동북능선. 바위표면에 가마솥 같은 가마가 9개나 패어있는 봉우리 구정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돌조각이 압도한다. 가족바위 베틀굴 만삭바위 여인바위 시루떡바위(시루봉) 선돌 선비바위 불상바위 연인바위 오리바위…. 바람재 서쪽 능선에서 구정봉을 바라보면 둥글둥글 큰 바윗덩어리들이 포개놓은 듯, 칼로 자르다 만듯 황홀하다. 산 하나가 거대한 수석전시장이요 조물주가 빚은 조각공원이다. 월출산의 또하나 매력은 운해. 평야의 들바람과 영산강 강바람이 맞부딪쳐 천황봉 정상에서 만들어내는 구름바다는 우리를 허튼 망상에서 헤어나 ‘짧은 깨달음’의 세계로 이끈다. 설악산 금강산보다 크지 않지만 속이 빵빵하게 차있는 월출산. 내밀하고 담백하며 번들번들하지 않고 빛나지 않지만 광채가 있다. 아름다움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엉성한듯 하면서 완성돼 있는 산. 월출산은 이름 그대로 ‘달산’이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둥근 달이 뜬다.’ 이번 정월대보름에는 하춘화의 ‘영암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월출산에 달맞이나 가볼까. 〈영암〓허문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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