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회상의 열차」동행기]세월속에 잊힌 恨많은 삶

입력 1997-09-17 20:15수정 2009-09-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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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망울이 푸르게 물들 것 같은 하늘, 하얀 자작나무숲, 바이칼호수로 흐르는 시르카강이 차창 밖으로 끝없이 따라온다. 12일 하바로프스크에 기착했을 때 아나톨리 김과 함께 아무르강가에 섰다. 그는 12세까지 여기서 살았다. 체첸 아이들과 낚시를 하고 포도서리도 함께 하며. 대학2학년 때 강제이주당한 그의 아버지는 『왜 가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한다. 열차가 서는 역마다 청년들이 불려 나가 영문 모른 채 노래를 불러야 했다. 막대의 가락에 맞춰 춤추기도 해야 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24세 꽃다운 나이에 숨져간 여성 알렉산드라 김. 시립묘지에 있는 작가 조명희의 무덤 앞에 서서 말을 잃는다. 그도 강제이주되던 무렵 처형당했다. 솔제니친이 하바로프스크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묵념했던 묘지. 이제는 석판속에 조명희가 조각으로 남아있었다. 하바로프스크 철도옆에는 옛적 이동감옥이었던 자리에 체육대학이 서있었다. 억류자들이 하염없이 열차에 실려 떠났던 그곳에는 86년에야 비석이 서고, 이제는 젊디젊은 체육대생들이 사연 모른 채 웃으며 오간다. 시베리아를 달려가자 삶은 감자속 같은 아이들이 벌판에서 뛰놀고 장화 신은 사내가 개를 데리고 열차를 바라본다. 열차안에서 맹동욱교수가 『이상(理想)을 잃고 쓰러져갔다』고 옛세월을 회고한다. 이르쿠츠크사범대학장이었던 한명세, 그곳 고려공산당 당수였던 그도 37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처형되었다던가. 열차칸에서 만난 동포 손복남할머니는 『우리말을 잊고 살았는데 88올림픽 때에야 「내뒤에 조국이 있구나」하는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치과의사 예나 김에게 알고 있는 우리 말을 물어보왔다. 『아버지 어머니 딸 예술 물』 그러면서 쑥스럽게 덧붙이는 말. 『내 한국말이 짧습니다』 끝없이 광활한 대자연…. 그 속에서 60여년 전 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이주해간 부모를 둔 그들이 선조들의 삶을 되새기고 되새겼으면. 「회상의 열차」는 밤낮을 가로질러 달린다. 차창 밖에는 자작나무 푸른 이파리가 바래가고 있다. 글을 쓰는 내손에는 깎지 못한 손톱이 길게 자라 지나온 시간을 알려준다. 한수산(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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