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IISS 「전략문제논평」]파키스탄 내년선거 힘들지도

  • 입력 1996년 12월 29일 20시 56분


「정리·런던〓李進寧특파원」 지난달 5일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총리가 옛동지인 파루크 레가리 대통령에 의해 축출됨으로써 민주화의 도정(道程)에 있던 파키스탄은 또다시 혼란을 맞고 있다. 부토의 축출은 전혀 예상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 경제-외교 난제 산적 ▼ 그녀는 8주전부터 위기에 처했다. 항간에서는 그녀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지난 9월 카라치에서 발생한 정적이자 처남인 무르타자 부토 암살사건의 배후인물이라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압력에 따라 긴축재정정책을 발표했으나 돈많은 사람과 도시의 빈민들 모두로부터 반발을 사는 곤욕을 치렀다. 축출되기 이틀전부터는 부패와 무능을 들먹이며 노골적으로 그녀의 사임을 요구하는 소수 과격이슬람정당 자마트 이슬라미의 시위가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의 축출은 그다지 큰 충격은 주지 않았다. 비록 서방에서는 상당한 찬양을 받아왔지만 파키스탄내에서는 지난 93년 10월의 선거이래 인기가 계속 하향곡선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레가리 대통령이 그녀를 축출한 주요 명분은 부패와 정실인사, 실정(失政)에다 특히 카라치지방에서 만연하고 있는 무법적인 살해사건들이다. 레가리 대통령은 말리크 메라즈 칼리드로 하여금 과도행정부를 이끌도록 하는 한편 내년 2월로 새 선거일을 잡았다. ▼ 과도정부 정국 불안 ▼ 선거일이 제대로 지켜질지와 아무런 장애없이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지가 파키스탄의 정치엘리트들이 가장 마음을 쓰고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는 레가리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내에서 직무를 잘 수행해왔다. 군부독재자인 모하메드 지아 울하크는 지난 85년 파키스탄에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면서 헌법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8차헌법이라고 불리는 이 수정헌법의 요체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들이 선출한 정부를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지아 전대통령은 비록 지난 88년 미심쩍은 비행기추락사고로 사망했지만 8차헌법은 폐지되지 않은 채 아직까지 존속되고 있다. 지난 85년 이후 비록 경우는 다르지만 이 헌법에 의해 무려 4차례나 총리들이 축출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군사통치로의 회귀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일 따름이었다. 일부에서는 이 헌법이 오히려 유용한 측면이 있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즉 군부로 하여금 자신들이 신뢰하지 않는 정부를 축출토록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줌으로써 오히려 군부통치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 군사통치 회귀 희박 ▼ 어찌보면 이같은 일이 실제로 지난 11월에 일어난 셈이다. 지아 전대통령 사망이후 파키스탄의 정치권력은 비공식적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총리와 비선출직인 대통령, 군참모총장 등 트로이카 체제로 분할돼 있었다. 이들간의 권력경쟁은 그동안 상당한 정치불안을 야기해 왔다. 부토 전총리는 군과 행정간의 연계를 차단하려다 지난 90년 권력에서 밀려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이번에 두번째로 축출됐을 때 군지도부는 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파키스탄에서 군이 두드러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민주주의 옹호자들이 우려하는 바는 군의 영향력보다는 오히려 새로 들어선 과도행정부가 새로운 선거를 치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레가리 대통령은 과도행정부를 자신의 측근들로 채웠으며 부토 전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레가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PPP의 열성당원이었던 칼리드 과도총리는 부패혐의가 있는 정치인들은 선거에 나설 수 없도록 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공포, 공정한 게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 근본적 개혁 힘들듯 ▼그러나 새로 선거가 치러진다 하더라도 파키스탄 내부와는 달리 외부세계에는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는 부패정도가 덜하고 덜 무능하며 덜 관료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나 핵확산 외교문제 등 외부세계에서 볼때 중요한 분야의 경우 새 정부도 큰 변화를 도모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과도한 국방지출, 핵문제, 인도와의 관계, 카슈미르와 아프가니스탄문제 등은 국익차원에서 전통적으로 거론불가의 사항으로 이는 군이 최후의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군이 정책결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지아 전대통령 때부터다. 그가 77년부터 85년까지 계엄령을 시행하면서 군인사와 군영향력이 정부와 준정부조직에 광범위하게 침투하게 된 것이다. 계엄령해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도록 하지 않는 헌법적인 장치를 필요로 했으며 이로인해 군의 영향력은 계속 존속됐으며 비밀정보기관의 권한 또한 확대됐다. 이 결과 뒤에 들어선 민간정부들은 비밀정보기관이나 군을 한번도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파키스탄의 군이나 정보기관은 앞으로도 계속 정치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과 역할이 계속되는 한 파키스탄은 국내적인 또는 국제적인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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