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단독 기습처리 잘못이다

  • 입력 1996년 12월 26일 20시 24분


양보없는 격돌정치는 마침내 여당의 기습처리라는 또 하나의 얼룩을 헌정사에 남겼다. 신한국당이 무슨 명분을 내세우든 야당을 따돌리고 새벽에 여당소속 의원들만 불러모아 쟁점의안을 한꺼번에 단독 기습처리한 것은 큰 잘못이다. 본란은 그동안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개정안 등의 연내처리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국회가 제모습을 찾아 원만하게 합의처리토록 촉구한 바 있다. 여당은 매일같이 야당이 국회의장을 감금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는 시급한 법안처리를 위해 그 방법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야당의 원천봉쇄가 자초한 긴급 구난조치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정국운영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정말 그 방법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란은 어제 다수결(多數決)원칙이 국회에서 다수의 밀어붙이기 수단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수결원칙이 의회정치의 요체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거친 다음 그래도 타협이 안될 경우의 마지막 문제해결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 여당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야당들도 책임이 있다. 허를 찔린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의회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폭거이자 민주주의를 강도질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원천무효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동안 야당들이 물리적 힘으로 임시국회 개회자체를 원천봉쇄하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결과 여당에 빌미를 준 것도 사실이다. 이 점 야당들은 원인제공자로서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 원인과 결과가 맞물린 만큼 여야 모두의 공동책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의 기습처리가 몰아온 후유증은 심각하다. 헌법소원을 비롯 장내외투쟁을 선언한 야당들은 여당소속 국회부의장과 원내총무 사퇴를 요구하며 이미 시한부 농성에 들어갔다. 여당 또한 여기에 「힘에는 힘」의 논리로 맞받아칠 자세여서 정국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입법기관인 국회기능은 정지된 채 전투적 용어들만 난무하는 이런 험악한 대결국면이 어디까지 치달을 것인지 정국의 앞날을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대선(大選)을 겨냥한 정국의 주도권확보에 사활(死活)을 걸었다 해도 여야가 이럴 수는 없다. 새해로 접어들면 경기부진과 고용불안에다 대선까지 겹쳐 사회는 극도로 불안해질 개연성(蓋然性)이 높다. 사회를 안정시키면서 대선경쟁을 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싸움만 해 사회혼란과 갈등을 조장한다면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여야대결이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사회불안을 더욱 부채질하는 교란요인이 되지 않도록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여야 모두 반성과 자제(自制)가 필요한 시점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