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아담한 합숙소 준공”…동아일보가 본 태릉선수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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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시설 좁아 레슬링 등 더부살이 훈련”

1966년 6월 29일자 동아일보는 ‘국가대표급 산실 마련’이라는 제목과 함께 태릉선수합숙소 준공 소식을 전했다. 한국 스포츠의 요람이 된 태릉선수촌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본관 사진에 ‘아담하다’는 설명을 붙일 만큼 그 시작은 미약했다.

1972년 7월 남자 숙소 전진관 개관에 맞춰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이 고급 담요 200장(시가 200만 원)을 기탁했고, 유한양행과 일동제약은 의약품을 전달했다. 대표팀에 대한 주위의 온기가 싹트던 시기였다.

수많은 장소 가운데 왜 태릉이었을까. 대한체육회장으로 태릉선수촌 건립을 주도한 민관식 전 문교부 장관은 1976년 11월 동아일보에 연재한 ‘그때 그 일들’이란 회고록에서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떠오른 곳이 태릉 일대였다’고 회상했다. 서울 외곽에 뛰어난 풍광을 지녔으며 문화재 관리국 소유지여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등 국내 최초 대표팀 훈련센터 건립에 최적지로 판단한 것이다.

태릉선수촌은 올림픽, 아시아경기를 앞둔 때마다 반짝 관심을 받았다. 대통령 행차가 많아지는 것도 이즈음. 동아일보 1994년 1월 9일자에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새벽에 태릉선수촌을 찾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 대비해 훈련하는 대표 선수 440명과 체조를 한 뒤 조깅하는 사진과 기사가 게재됐다. 김 대통령은 400m 트랙을 11바퀴나 돈 뒤 선수촌 식당에서 굴비구이로 아침 식사를 했다. 재임 기간 최다 태릉선수촌 방문 기록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10번 넘게 찾았다는 보도도 나온다.

태릉선수촌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는 1983년 1월 선수촌의 비좁은 시설을 보도하면서 유도 대표팀과 훈련장을 나누어 쓰던 레슬링 대표팀이 농구장에 매트를 깔고 훈련하고 있으며, 축구와 하키가 같은 경기장을 사용하는 등 열악한 현실을 전달했다.

훈훈한 미담도 눈길을 끌었다. 1991년에는 개촌 때부터 태릉선수촌과 인연을 맺은 뒤 25년 동안 식당에서 일하다 정년퇴직을 앞둔 여성 주방장의 애환을 담은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의 급여 수준도 지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봉 32만 원과 수당 18만 원을 합해 월 50만 원. 하지만 오랜 세월 ‘선수촌 어머니’로 불린 자부심은 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태릉선수촌#선수촌 어머니#한국 스포츠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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