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니폼 입고 ‘멕시코 4강신화’… 3위 했으면 아파트 한 채 받을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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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였던 이기근 이기근FC 감독이 당시 착용했던 유니폼의 태극마크를 가리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였던 이기근 이기근FC 감독이 당시 착용했던 유니폼의 태극마크를 가리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금 후배들 기량이 34년 전 우리보다 훨씬 낫죠. 국민들의 열띤 응원을 등에 업고 뛴다면 1983년 멕시코의 성과를 넘어 결승 진출도 가능할 겁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코리아 2017 개막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축구가 FIFA 주관 대회 최초로 4강을 달성했던 1983년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 멤버였던 이기근 이기근FC 감독(52)은 “조별리그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맞붙었는데 멕시코 축구의 성지 아스테카 스타디움에 10만 명 가까운 관중이 들어왔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았고 이겼다. 올해는 안방이다. 두려움 없이 실력을 발휘하면 역대 최고의 성적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이 1983년 봄 태릉선수촌에서 마스크를 쓴 채 드리블을 하고 있다. 나름 고지대 적응을 위한 훈련이었다(왼쪽 사진). 프로축구 포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이 감독(오른쪽 사진). 동아일보DB
이 감독이 1983년 봄 태릉선수촌에서 마스크를 쓴 채 드리블을 하고 있다. 나름 고지대 적응을 위한 훈련이었다(왼쪽 사진). 프로축구 포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이 감독(오른쪽 사진). 동아일보DB
우신고-한양대 출신의 이 감독은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득점왕을 2차례(1988년, 1991년) 차지한 당대 최고의 골잡이다. 현재 이기근FC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고교 3학년 때인 1982년 1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청소년선수권대회 본선에 출전해 대표팀에서는 유일하게 3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는 등 명실상부한 에이스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2승 1무로 우승했고 덕분에 멕시코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김종부(경남FC 감독), 신연호(단국대 감독)는 알아도 멕시코 본선에서 그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팬들은 별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경기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직전에 대표팀 박종환 감독님이 자신이 맡고 있는 서울시청 입단을 권유하시더라고요. 말씀은 감사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양대에 입학했죠. 본선은 대학에 입학한 뒤인 1983년 6월에 열렸는데 전년도 예선, 최종예선에서 모두 선발로 뛰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저를 기용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일종의 괘씸죄(?)에 걸렸던 거겠죠.”

이 감독은 다행히 폴란드와의 3, 4위전에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 이날 대표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다. 한국이 그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얻은 골이었다.

“제가 전반 37분에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 30분이 넘었을 때까지 실점하지 않았죠. 15분만 버티면 3위를 할 수 있었는데 후반 32분에 동점골, 연장 13분에 역전골을 내줬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라커룸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았죠. 진 것도 아쉽지만 아파트 한 채가 날아갔으니까요.”

아파트 한 채? 그가 털어놓은 얘기는 이랬다. 3, 4위전을 앞두고 국내의 한 언론에 ‘한국이 3위를 하면 현대건설이 선수단 전원에게 강남에 지은 30평대 아파트를 준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고 있던 시절이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코칭스태프 몫까지 약 30채의 아파트가 날아간 셈이다.

“저야 어려서 아파트에 대한 개념조차 별로 없었는데 훗날 생각해 보니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이 얼마나 아쉬웠을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하하.”

아파트는 못 얻었어도 금의환향한 대표팀은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6월 21일 귀국하자마자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수많은 시민의 박수 속에 카퍼레이드를 했고 이튿날에는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훈장까지 받았다.

“청와대 직원이 선수단 모두에게 금일봉을 줬어요. 나중에 열어보니 100만 원이 들어 있더라고요. 당시로는 대단히 큰 액수였죠.”

청소년 대표팀은 4강 신화 이전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1982년 AFC 청소년선수권대회 본선 우승을 한 덕분에 일찌감치 병역 혜택을 받은 것. 지금은 성인 월드컵에서 우승해도 얻을 수 없는 혜택이다.

“축구 덕분에 과분한 대접을 받은 거죠. 사실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정도? 조별리그만 통과해도 대단한 성공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때 우리는 ‘기계적’으로 축구를 했어요. 멕시코가 고지대라는 이유로 마스크를 쓴 채 무작정 태릉선수촌을 달리는 등 지금과 비교하면 훈련 방식도 비과학적이었죠. 요즘 후배들은 당시 우리에게 없던 창의성을 갖고 있습니다. 훈련과 몸 관리도 과학적이고요. 1980년대와 비교해 세계 수준과의 격차도 많이 줄었죠.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20일 전주에서 열리는 기니와의 개막전에 초대받았으니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이기근#월드컵 코리아 2017#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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