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공부하다 주말에만 야구? 국내현실과 안맞아”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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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8일 07시 00분


야구인·학부모 등 50인 설문
“고교야구 주말리그제 어떻게 보나”

올해 첫 시행된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인프라 부족, 사전 준비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파열음을 빚어내고 있다. 지난해 한 전국고교야구대회 모습. 스포츠동아DB
올해 첫 시행된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인프라 부족, 사전 준비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파열음을 빚어내고 있다. 지난해 한 전국고교야구대회 모습. 스포츠동아DB
“진로결정 앞둔 고교선수에겐 수업보다 훈련 중요”
시행 한달…아마 야구인 93% “제대로 운영안돼”

각팀 에이스 집중등판…고른 출전기회 취지 무색
66% “주말리그 도입에 공감”…향후 운영 과제로
‘공부하는 선수 육성’을 목표로 내세운 ‘고교야구 주말리그제’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선수들에게‘학습권’을 보장해 경쟁력을 갖춘 스포츠맨이자 사회인으로 키우겠다는 고교야구 주말리그제가 시행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왕중왕전 실시에 따른 문제점과 대학의 입시요강에 반발해 고등학교 감독들이 주말리그 보이콧 직전까지 갔다가 물러서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스포츠동아는 주말리그제의 도입 취지에 대한 찬반 여부부터 현 운영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프로야구(감독, 선수, 스카우트) 종사자 뿐만 아니라 유관단체인 KBO, 대한야구협회 관계자, 방송해설자와 함께 중·고·대학교 야구부 감독과 학부모, 고교선수까지 총 50명을 대상으로 했다.○설문조사 결과 분석

▲도입 취지에는 대부분 동감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한다’는 주말리그 취지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전체 응답자 50명 중 66%에 이르는 33명이 이같은 의견을 냈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 나라도 야구를 그만두고 변호사, 의사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LG 박종훈 감독의 견해와 같았다.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선수들이 프로 입단이나 대학 진학에 실패할 경우, 향후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취지 자체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프로야구 모 선수는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며 “초·중학교 야구선수들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당연히 찬성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뛰는 선수들은 프로 또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선수들이다. 당장 훈련을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한 중학교 감독은 “일본도 전문적인 선수들을 키워내는 학교는 수업 대신 훈련에 절대 비중을 둔다. 학부형들이 와서 훈련을 시켜달라고 한다고 들었다. 전문직이면 전문직다운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주말리그 시행, 부적절하다’

주말리그의 도입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주말리그제 시행이 적절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이상과 현실은 엄연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전체 응답자 50명 중‘야구란 종목의 특수성과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주말리그 시행은 부적절하다’고 답한 사람이 총 41명(82%)에 이르렀다. 특히 아마추어 관계자 20명 중에서 단 한명만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한 고교 감독은 “한국에서는 운동선수가 특기자 아닌가. 고교야구는 대학진학과 프로입단, 둘 중에서 하나 확실한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모 프로스카우트는 “어떤 학부형은 ‘수능시험을 앞둔 고 3학생에게 지금까지 공부만 했기 때문에 건강이 안 좋을 수 있다며 7교시까지 체육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 공부해서 대학을 가라고 한다면 99.9% 학부형이 반대할 것’이라고 비유하더라. 이것이 현재 분위기”라고 전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즉‘공부도 하면서 즐기는 야구’를 해야할 때는 그냥 놔두고, 유예기간 없이 ‘정부 정책’에 따라 고등학교부터 주말리그를 적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주말리그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

시행 한달이 지난 주말리그제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카우트를 제외한 프로관계자를 설문 대상에서 뺀 것은 무엇보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지도자 등 총 28명 응답자 중 2명을 제외한 무려 26명(93%)이‘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었다.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문제점도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라는 다분히 낙관적인 시선을 고려하더라도, 90% 이상 문제점을 지적한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갑작스런 시행, 학습권 보장? 인권침해!

모 고등학교 감독은 “교육부에서는 선수들의 학습권 침해를 얘기하지만, 야구하는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 공부하는 날 다 따라다니고, 또 훈련한다. 남들 다 쉬는 주말에 게임을 해야 하니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인권침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고교 감독은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온 것도 사실 없다”면서 “서울 대부분 학교는 ‘무조건 수업에 들어가라’는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지만 어떤 지방 학교는 지난해와 똑같이 거의 수업을 듣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수년간 공부를 하지 않은 선수들에게 물리 화학을 배우게 하느니보다, 차라리 컴퓨터 한자 영어 등 특화된 수업을 해주는 게 현실적으로 훨씬 낫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왕중왕전 예선전으로 변질된 주말리그

당초 전국 모든 대학이 주말리그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대학들이 신입생을 왕중왕전 진출팀에서 선발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주말리그는 왕중왕전 예선전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주말에만 게임을 하면서 각 팀은 에이스가 일주일씩 휴식을 거쳐 3게임, 4게임을 완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주말리그 도입 취지 중 하나인 ‘선수들의 고른 출전 기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남고 한현희는 3경기에서 모두 완투를 했는데, 2경기에 나서 완봉승을 거뒀고 1게임은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에이스들만 출전하는 게임이 계속되면서 같은 권역에 빼어난 투수들이 있는 타자들의 타율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다.

한 대학 감독은 “타율 기준을 충족시키는 타자들이 거의 없어 입학 기준을 대폭 낮춰 적용해야할 형편”이라고 했다. “전국대회인 왕중왕전에 나가지 못하는 야구부를 어느 동문이 좋아하겠느냐. 그렇잖아도 부족한 고등학교 야구부 수가 줄어들 수 있다. 이렇게 가다보면 성적을 내야하는 감독은 쓰는 선수만 쓸 것이고, 학습권 보장도 사실상 허울 좋은 포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더욱이 한 프로스카우트는 “8개 권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왕중왕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꼭 1,2등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다 보니 4승을 벌어 놓은 팀은 사정이 딱한 상대팀 감독과의 친소관계나 학교 관계에 따라 ‘봐주기 게임’을 하기도 한다”며 “그야말로 파행 운영이 되고 있는 셈”이라고 일갈했다.

▲늘어난 비용, 감감 무소식뿐인 지원금

지방고교 한 감독은 “주말마다 경기를 하다보니 이동과 숙박 비용 등이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며 “지원금을 준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수업을 다 받고 방과 후에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야간조명 시설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보조금이 지급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이에 대해 대한야구협회 관계자는 “문체부와 토토지원금 등을 아직 지급받지 못해 집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수도권내 한 고등학교 감독은 “설사 야간조명 시설을 설치해준다고 하더라도, 그 유지비용을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하더라. 훈련 없이 게임만 하라는 말과 같다”고 현실을 전했다.

“일주일에 한 두 게임을 하는 축구가 주말리그를 시작했다고, 매일 경기하는 것이 원칙인 야구가 주말리그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저변이 무너지고, 프로는 프로대로 경기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충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운영되면 선수도, 한국 야구도 모두 죽는다”는 한 프로관계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도헌 기자 (트위터 @kimdohoney)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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