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 5개월前 급조 女럭비,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0대 51, 0 대 48, 0 대 52, 10 대 21… 6전전패 했지만

《한국 진영 골라인 부근에서 낚아챈 럭비공을 가슴에 품고 110여 m 떨어진 반대편 골라인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최혜영(20·부산대 체육교육과 3년)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 같았다. 싱가포르 선수들은 따라잡지 못했다. 마침내 상대편 골라인에 도달한 최혜영이 럭비공을 바닥에 찍었다. 광저우 아시아경기 여자 럭비(7인제)에서 한국 팀이 5경기 만에 첫 득점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여자 럭비 마지막 날인 23일 광저우 다쉐춘 종합경기장에서 카자흐스탄과의 8강전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인도와 차례로 순위 결정전을 치러 모두 졌다. 비록 1승도 올리지 못했지만 싱가포르전 5점에 이어 인도전에서 10점을 넣어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 ‘대표를 모집합니다’

한국 여자 럭비대표팀 선수들(오른쪽에서 첫 번째와 등 번호 6번)이 23일 중국 광저우 다쉐춘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8강전에서 카자흐스탄 선수의 전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0-51, 태국에 0-48, 홍콩에 0-36, 카자흐스탄에 0-52, 싱가포르에 5-31, 인도에 10-21 등 6전 전패해 최하위에 머물렀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국 여자 럭비대표팀 선수들(오른쪽에서 첫 번째와 등 번호 6번)이 23일 중국 광저우 다쉐춘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8강전에서 카자흐스탄 선수의 전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0-51, 태국에 0-48, 홍콩에 0-36, 카자흐스탄에 0-52, 싱가포르에 5-31, 인도에 10-21 등 6전 전패해 최하위에 머물렀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주장 이민희(23)는 5개월 전인 7월 초 인천 송도에서 대표팀 합숙훈련을 시작했던 첫날을 잊지 못한다. “기가 막혔죠. 럭비가 무슨 경기인지도 모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이런 팀으로 광저우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죠.”

한국의 사상 첫 여자 럭비 대표팀 구성은 5월 25일 대한럭비협회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띄운 ‘2010 여자 럭비 국가대표선수 모집 안내’ 글로 시작됐다. 7인제 여자 럭비가 올림픽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부터, 아시아경기는 이번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결정되자 뒤늦게 대표팀을 만들어 출전하기로 한 것.

6월 5일 고려대 운동장에서 열린 선발전엔 럭비보다는 태극마크에 더 관심 있는 35명이 모여들었다. 고등학생부터 20대 중반의 직장인까지 연령도, 체격도, 직업도 다양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50m와 100m 달리기, 바운드된 럭비공 잡기, 럭비공 멀리던지기 등 테스트를 실시해 25명을 추렸고 합숙 훈련을 거쳐 12명을 최종 확정했다.

○ 좌절의 연속


이민희는 2007년 ‘서울 시스터즈’라는 주한 외국인들의 여자 럭비 동아리에 가입해 이번 대표팀 멤버 중 경력이 가장 많다. 나머지는 미식축구와 럭비를 구분 못하는 수준. 낮에는 5시간씩 기초 기술 훈련, 저녁엔 이론 교육이 이어진 강도 높은 합숙 훈련에 부상자도 속출했다. 피로골절 부상으로 2명이 대표팀을 떠났다. 그런 과정에서 오합지졸 럭비 팀은 점차 모양새를 갖춰 나갔다. 문영찬 감독은 “광저우에서 1승만 하자”고 선수들을 독려했고 힘든 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은 독기를 품었다.

하지만 1승은 고사하고 첫 득점의 순간마저 멀기만 했다. 21일 중국과의 첫 경기 0-51 패배를 시작으로 태국, 홍콩에 0-48, 0-36으로 판판이 깨졌다. 23일 첫 경기인 카자흐스탄전에서도 0-52로 졌다. 중국 취재진은 한국 선수들의 미숙한 움직임에 킥킥거렸다. 그나마 가장 기술이 뛰어난 이민희는 중국전에서 왼 발목을 접질려 계속 벤치 신세.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컨버전 골 킥(미식축구의 터치다운 격인 트라이를 하면 주는 2점짜리 골 킥)을 할 수 있는 선수라 전력 차질이 컸다.

○ 여자 럭비 강국으로 가는 첫걸음

계속된 패배로 선수단 분위기는 침울해지기만 했다. 출전을 못하는 이민희의 마음도 무거웠다. 중학교 때 육상, 고교 때 태권도를 했지만 평범한 선수였던 그는 럭비에서 비로소 자신의 열정을 발견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헬스클럽 트레이너 자리도 그만둬 한국에 돌아오면 실업자 신세. 언제 다시 대표팀이 소집될지도 기약할 수 없지만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급조된 여자 럭비 팀에 대해 럭비계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하지만 이민희는 “좀 더 일찍 대표팀이 구성됐으면 좋았겠지만 시작이 중요한 것 아니냐. 여자 축구도 처음에는 형편없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인도와의 마지막 7, 8위 결정전은 결승전 못지않게 치열했다. 한국은 먼저 민경진(26·라디오 프로듀서)의 트라이로 5점을 올린 데 이어 경기 종료 직전 박소연(19·부산대 체육교육과 1년)의 트라이로 5점을 추가해 잘 싸웠지만 10-21로 져 최하위에 그쳤다. 앞선 싱가포르전은 5-31 패배.

남자팀, 中꺾고 동메달

한편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8년 만의 정상 복귀를 노렸던 남자 럭비 대표팀은 일본과 준결승에서 15-28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3, 4위전에서 중국을 21-14로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저우=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