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켜줄게 너를’…정인이 위해 팔 걷고 나선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5일 21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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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역아동센터 소속 아이들이 4일 정인이를 추모 하며 만든 노래 ‘TV 속 울던 아이’를 녹음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서인 송에스더 김민지 김민 양. 푸르른지역아동센터 제공
경주 지역아동센터 소속 아이들이 4일 정인이를 추모 하며 만든 노래 ‘TV 속 울던 아이’를 녹음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서인 송에스더 김민지 김민 양. 푸르른지역아동센터 제공
“TV 속 울던 아이. 꼭 감아버린 눈, 아무도 없는 아이.”

초등학생인 이혜연 양(11)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최근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혜연이와 친구들은 어른들을 향해 “아동학대를 막아달라”는 호소를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다음 달 중순 앨범을 내기로 했다.

혜연이는 지난해 가을 ‘정인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했다. “더 이상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경북 경주시 푸르른지역아동센터(센터장 송경호)에 함께 소속된 친구들과 노래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나 방임 등 열악한 상황에 있는 아동들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혜연이는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인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아보지도 못했는데, 저는 친구들도 있고 노래도 할 수 있어 정인이에게 너무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청년 비영리단체 통감(대표 이석린)도 지난해 10월 혜연이를 포함한 지역아동센터 소속 아이들과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시선’(시작하세요, 선한 오지랖)을 시작했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선 학대 받는 듯한 아동이 보이면 신속히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중요한데, 적극적인 신고는 좋은 ‘오지랖’이라는 뜻에서 캠페인 제목을 정했다.

아이들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노래 10곡을 담아 ‘지켜줄게 너를’이란 제목의 앨범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학교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해 서울에 있는 녹음실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고통 받는 아동을 생각하면 캠페인을 미룰 수 없다”며 결석처리를 감수하고 노래를 녹음했다. 앨범 제작에는 가수 김현철 씨와 홍경민 박기영 씨도 참여했다.

아이들은 비영리단체 ‘통감’ 소속 대학생들과 함께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5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며 이 제안서를 전달했다. 박수연 통감 정책팀장은 이날 회의에서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법과 정책을 봤을 때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를 아이들과 함께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모든 아동이 안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이를 추모하며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는 푸르른지역아동센터 아이들(왼쪽 위)과 대학생 비영리단체 통감(오른쪽 위)이 5일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에게 직접 만든 정책제안서를 전달하며 정 의원과 아동학대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다.
정인이를 추모하며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는 푸르른지역아동센터 아이들(왼쪽 위)과 대학생 비영리단체 통감(오른쪽 위)이 5일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에게 직접 만든 정책제안서를 전달하며 정 의원과 아동학대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다.
중학생 나서인 양(13)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어른들이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한 번쯤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 동생들을 이끌며 함께 노래를 만든 나윤미 양(18)은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인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우리가 끝까지 기억할게”라고 말했다. 김민 양(18)은 정인이에게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해. 내가 법을 바꿀 힘은 없지만 아동학대가 없어져야 한다고 계속 외칠게”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을 돌보며 캠페인을 진행한 송경호 푸르른지역아동센터장은 “정인이 사건을 접하기 전과 후의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며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서 책임감을 배웠다”고 했다. ‘재능기부’ 형태로 아이들이 만든 노래를 녹음하고 프로듀싱 한 송정욱 로드뮤직 대표는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앨범 제작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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