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글씨는 ‘똑바로’, 답안은 ‘완벽하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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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서술형 문항, 학생과 교사 '골머리'

중학교 교사가 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다. 교사가 참고로 하는 유사 답안 목록에는 정답 외에도 교사 간 협의를 거쳐 정답으로 인정하기로 한 답안들이 빨간펜으로 추가되어 있다.
중학교 교사가 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다. 교사가 참고로 하는 유사 답안 목록에는 정답 외에도 교사 간 협의를 거쳐 정답으로 인정하기로 한 답안들이 빨간펜으로 추가되어 있다.
중2 A 양. 지난 1학기 중간고사 과학시험에서 ‘구리선을 불꽃반응 실험에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를 묻는 서술형 문항에 ‘구리선을 사용하면 그 선 자체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답을 적었다. ‘구리선에 포함된 구리 성분이 불꽃과 만나면 불꽃이 청록색으로 변하게 돼 정작 구리선에 묻힌 시료의 불꽃반응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적은 답변이었다.

정답이라고 확신한 A 양은 성적표를 보고 놀랐다. 해당 문제가 오답처리 돼 5점이나 깎였던 것. ‘불꽃반응’이라는 정확한 단어 대신 A 양이 ‘반응’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A 양은 “이미 문제에 ‘불꽃반응’이라는 표현이 있어 당연히 ‘반응’이란 표현이 ‘불꽃반응’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면서 “‘부분 점수라도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사 입장에서는 ‘원소의 불꽃반응’을 공부하는 내용인 만큼 ‘불꽃반응’이라는 정확한 단어가 없이는 정답으로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것. ‘반응’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지나치게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교에서 기말고사가 마무리 된 요즘 A 양처럼 가채점 결과보다 낮은 성적표를 받아든 중고생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서술형 문항. 학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술형 문항의 배점은 100점 만점에 30점 가량이다. 비중이 적지 않은데다 서술형 답안에서 예기치 않게 감점되는 일도 많기 때문. 채점하는 교사 입장에서도 서술형 문항은 골칫거리다.

‘π’ 비뚤게 써 ‘낭패’

고3 B 군도 수학 시험에서 15점짜리 서술형 문항의 정답과 풀이 과정을 모두 맞게 썼다고 확신했는데, 오답 처리된 경험이 있다. 원인은 비뚤게 쓴 글씨에 있었다. 원주율을 뜻하는 ‘파이(π)’를 비스듬히 쓴 것. 이를 교사는 ‘χ’로 받아들였다.

B 군이 교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풀이과정은 문제가 없었으나 부분점수를 받지 못했다. 교사 입장에선 π를 χ로 쓴 것은 엄청난 오류이므로 풀이과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B 군은 평소 수학학원에 다닐 때도 원장으로부터 “π를 자꾸만 갈겨써서 χ로 잘못 보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지적을 받아온 터였다.

교사도 ‘괴로워’

학생들 입장에선 교사가 지나치게 경직된 채점 기준을 가졌다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교사들의 고충도 만만찮다. 워낙 다양한 답을 학생들이 쓰다보니 ‘정답’이나 ‘부분점수’를 주는 기준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중학교 가정 교사는 “서술형 문제는 채점하기가 겁이 난다”면서 “수업시간에 ‘핵심단어가 반드시 들어있어야 한다’ 등 서술형 답안 작성법을 아무리 강조해도 시험만 보면 각종 답안들이 쏟아져 나온다. ‘유사 답안 인정 목록’을 시험 전에 만들어놔도 시험이 끝나면 목록을 다시 정하는 협의 과정이 매번 있어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한 중학교 국어 교사는 “학부모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학원 강사가 학교로 전화해 채점 기준을 묻고 항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실제로 답안을 확인해보면 문제에 제시된 조건을 지키지 않았거나 부호나 맞춤법을 잘못 써 명백한 오답인 경우가 많은데, 학생들의 말만 듣고서 이의를 제기하곤 한다”고 토로했다.

서술형 문항의 확대는 암기 위주 교육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창의 사고를 기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일선 학교현장에선 채점을 둘러싼 논란들을 피하기 위해 당초 취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출제하는 경우도 생긴다.

한 고교 사회 교사는 “서술형 문항임에도 실제로는 단답형 문항의 답이 나오도록 출제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시험 전 수업시간에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서술해야만 답으로 인정하겠다’고 엄격한 채점기준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내신 성적에 민감한 고교에서 더욱 많이 발생한다.

서술형 답안 쓰는 연습을

서술형 문항의 비중은 앞으로도 줄지 않을 전망. 교육부는 올해 초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훈령의 개정을 일선 학교에 안내하면서 “교과의 성격과 특성에 적합한 평가 방법을 활용하되,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의 비중을 확대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결국 학생 스스로 서술형 문항의 채점 기준을 명확히 인지하고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EBS에서 중학 수학을 강의하는 배수경 경기 안곡중 수학 교사는 “수업 중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필기하면서 암기하지만 말고 스스로 답안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봐야 한다”면서 “답안을 작성한다고 생각하고 문장이나 식을 써본 뒤 선생님에게 첨삭 지도를 받으면서 정확한 표현인지 미리 확인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교육#서술형#신나는 공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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