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막은 2050 ‘신입생 농민들’… “농사 짓느라 학교는 못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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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현서고교 ‘슬픈 코미디’

올해 신입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던 경북 청송군 현서면 현서고가 성인 주민들의 입학으로 폐교를 면했지만 이들이 농사 등으로 등교를 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12일 경북도교육청과 현서고에 따르면 이 학교는 올해 1월 신입생을 받았지만 5명만 지원했다. 경북도교육청이 정한 1학년 최소 정원인 14명을 채우지 못하면 2년 후 문을 닫을 처지였다. 소식을 접한 주민들이 “지역 전통인 학교의 폐교는 막자”며 학생 유치에 나섰다. 10여 개 마을을 다니며 중학교까지 졸업한 사람들을 찾았다. 결국 지난달 3일 마감시한까지 부족한 9명을 채웠다. 이들은 이달 3일 자식뻘인 학생들과 함께 학교 강당에서 입학식을 했다. 최고령이 54세이고 40대가 6명, 30대와 20대가 각 1명으로 평균 나이가 41세다.

문제는 이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농민과 가정주부들이어서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 입학식 다음 날 4명만 등교했고 이후 12일까지 모두 출석하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폐교를 막겠다는 생각에 입학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등교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연간 70일 이상 결석하면 학사원칙에 따라 퇴학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매일 등교 요청 전화를 하고 있다. 강제 사항이 아니라 뾰족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매년 신입생 부족이 고민거리였다. 현서면은 북쪽으로 안동시 길안면, 남쪽으로 영천시 화북면 등 경북지역 중소도시와 맞닿아 있어 타 지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많은 편이다. 다른 지역 학생들이 지원해야 학교를 유지할 수 있고, 지난해에도 겨우 최소 정원을 채워 폐교를 면했다.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아 주민들이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통폐합 대상 학교로 선정돼 인근 안덕고교와 통합이 본격 추진됐다. 그러나 학교 위치와 지원 방안 등을 놓고 학부모 의견 차로 무산됐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통합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효식 현서고 교장(58)은 “사태를 원만하게 풀기 위해 학부모와 함께 1학기 안에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남은 학생들이 2학기부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립인 현서고는 1982년 5월 개교했다. 올해 전교생은 32명이며 지금까지 졸업생은 1300여 명이다. 청송지역 6개 고교 중 가장 작은 학교로 꼽힌다.

청송=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폐교#현서고#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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