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실은 ‘데이터 셔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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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엔 ‘빵 셔틀’… 작년엔 ‘와이파이 셔틀’ ‘애니팡 셔틀’

서울의 한 과학고에 다니는 A 군(17)은 요즘 학급에서 ‘데이터 셔틀’로 통한다. 같은 반 일부 학생들이 “데이터를 달라”고 하면 A 군은 부모님 명의로 가입된 자신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넘겨줘야 한다. 카카오톡이나 연예인 동영상 등을 보느라 한 달 치 데이터를 일찍 소진해 버린 학생들이 A 군에게 ‘데이터 상납’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전에 A 군은 ‘와이파이 셔틀’로 통했다. 자신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주위 친구들이 공유해서 쓸 수 있도록 ‘핫스팟 기능’을 켜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초 통신사가 데이터를 타인 간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A 군의 데이터 상납 방식이 ‘데이터 직접 상납’으로 바뀐 것이다.

청소년 상담 전문가들은 ‘한 반에 한 명’꼴로 널리 퍼진 ‘와이파이 셔틀’에 뒤이어 ‘데이터 셔틀’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셔틀’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또래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학교 폭력을 가리키는 은어다. 2010년 ‘왕따’ 아이들이 매점에서 빵을 사서 바치는 현상을 ‘빵 셔틀’이라 부르며 확산됐다. 스마트폰이 널리 이용되면서 지난해에는 게임 아이템을 바치는 ‘애니팡 셔틀’로 번지기도 했다.

10대 청소년들 간의 신종 ‘셔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황경익 상담사는 “상담을 해오는 학생 중에는 ‘데이터 셔틀’ 외에도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해 생일 케이크 등을 선물하라고 요구받는 경우도 있다”며 “이러한 행위 모두 넓은 범위의 신종 학교 폭력”이라고 말했다.

통신사 측에서는 예방책을 내놓고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데이터 셔틀’은 SK텔레콤이 2월 ‘T끼리 데이터 선물하기’ 서비스를 신설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학교 폭력에 악용될 것을 우려해 만 18세 이하 청소년 이용자들에 한해서는 데이터를 받는 것만 가능하도록 설정했지만 근본적인 방지는 불가능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내부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부모 명의의 휴대전화를 쓰는 경우나 직접 부모님 휴대전화로 데이터를 보내는 경우까지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인터넷 청소년 카페나 중고 거래 사이트 등에서 데이터 매매가 이뤄지고 있어 일부 학생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에게 데이터를 사오라고 강제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약관에 “데이터 선물하기 서비스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하고 매매글 작성자에 대해 일일이 불이익을 경고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은 10대 청소년들이 데이터 소비 욕구를 조절하지 못할 경우 ‘데이터 폭력’이 더욱 극성을 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청소년 전문 상담사는 “학교에서 수업 전에 휴대전화를 걷어도 아이들이 기존의 2G 휴대전화를 내놓고 스마트폰은 몰래 계속 갖고 있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10대들은 데이터 이용에 중독돼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데이터 셔틀#빵 셔틀#애니팡 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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