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꼬이고 덜덜… “발연기도 어렵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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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연습생 1일 체험, 본보 기자 도전해보니

“어깨는 곧게 펴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살포시….” 28일 ‘원데이 아이틴’에 참가한 연예인 지망생들이 댄스 강사의 구령에 맞춰 걸그룹의 ‘섹시 워킹’ 동작을 배우고 있다.
“어깨는 곧게 펴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살포시….” 28일 ‘원데이 아이틴’에 참가한 연예인 지망생들이 댄스 강사의 구령에 맞춰 걸그룹의 ‘섹시 워킹’ 동작을 배우고 있다.
A: (손을 잡혀 끌려 나오며) 손 놓고 얘기해. 사람들이 봐.

B: 너 이것밖에 안 되는 애였어?

A: 손 놓으라니까!

B: (더 꽉 붙잡는다) 대답해. 왜 그런 거야 너! (드라마 ‘드림하이2’ 중)

대본을 받아 든 기자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대사 13개로 이뤄진 짤막한 대본이었지만 모든 게 막막했다. 지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목소리 톤은? 얼굴 표정은? 온갖 생각에 어질어질한 기자의 주변에선 앳된 얼굴의 참가자들이 대본 읽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28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연예기획사 ‘판타지오’ 연습실은 연예인 지망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판타지오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습생 1일 체험 프로그램인 ‘원데이 아이틴’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17명. 500여 명의 지원자 중 예선을 거쳐 선발된 13∼20세의 여자 11명, 남자 6명이었다. 18번째 참가자로 연습생의 하루를 체험해 봤다.

1교시는 연기 수업. 배우 지망생인 설현용 군(19)이 남자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자의 짝이 됐다.

“난 다른 사람 희망 생각할 만큼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아. 지금 나한테 닥친 일만으로도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연습을 해보니 마지막 부분이 문제였다.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어떻게 해봐도 어색했다. 고교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연기 경험이라곤 학교 축제에서 ‘날라리 학생 3’ 역할을 해본 것이 전부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파트너와 연습실 중앙에 섰다. 달달 떨리는 무릎을 감추려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니까 니금 네 말은… 아, 아니 지금 네 말은….” 혀가 꼬이며 ‘발연기’가 이어졌다. 보다 못한 강사가 한마디 했다. “감정을 ‘빌드 업(build up)’한다고 생각하고 해보세요. 점층적으로 분노를 쌓아가는 느낌으로요.”

두 번째 시도에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비웃으며’라는 지문을 연기하려고 광대뼈를 있는 힘껏 올렸는데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다짐했다. ‘아이돌의 발연기에 대해 함부로 기사 쓰지 않으리.’

1교시 수업에서 과도한 긴장으로 급격한 체력 저하가 일어났다. 2, 3교시 스피치와 보컬 수업은 참관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피치 강의를 맡은 정유진 판타지오 본부장은 수줍어하는 참가자들을 향해 예능 프로그램 촬영 팁을 설명했다. “무조건 센터에 서세요. 웃으세요. 뚱하게 있으면 ‘백만 안티’ 생겨요. 겸손이 미덕이 아니니까 들이대세요.”

1교시 연기 수업에서 “손 놓으라니까!”라는 감정 섞인 대사에도 무표정으로 ‘발연기’를 하고 있는 최고야 기자.

판타지오 제공
1교시 연기 수업에서 “손 놓으라니까!”라는 감정 섞인 대사에도 무표정으로 ‘발연기’를 하고 있는 최고야 기자. 판타지오 제공
4교시는 가장 크게 걱정했던 과목, 춤이었다. 첫 동작은 골반을 좌우로 흔들며 걸어 나오는 걸그룹의 ‘섹시 워킹’. 강사는 “가슴-골반-다리 순서로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타라”고 주문했다. 쉬워보였는데 내 몸은 팝스타 비욘세의 ‘러브 온 탑’의 흥겨운 리듬을 타지 못했다. “다리 벌리지 마세요, 여자답게 춰야죠. 이거 제기 차는 동작 아니에요. 바운스인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자 ‘웨이브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가겠다’던 다짐은 사라졌다. 걸 그룹의 웨이브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걸스힙합 재즈댄스 리듬체조 등으로 단련된 어린 참가자의 신체와는 확실히 달랐다.

오후 6시가 되자 모든 일정이 끝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참가자들이 둘러앉아 소감을 나눴다. “오디션을 보려면 서울까지 올라와야 하고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없어서 춤이나 노래를 독학했어요. 이제 뭘 더 준비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이채림 양·16·경남 창원) “어젯밤 너무 떨려서 잠도 못자고, 날씬하게 보이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하루 빨리 진짜 연습생이 되고 싶어요.”(배우 지망생 최정현 양·15)

하루 종일 이어진 강도 높은 수업에도 참가자들은 “아쉽다” “더했으면 좋겠다”며 지칠 줄 몰랐다. 하지만 기자는 6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워킹과 웨이브를 배웠을 뿐인데도 온몸이 쑤셔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열정 가득했던 참가자들의 앳된 얼굴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피나는 노력을 한 지망생이 결국 선천적 재능을 가진 지망생을 이기더라”던 정유진 본부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연예기획사#연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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