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자본주의’에서 길을 찾다]<5>지리산高의 나눔교육, 행복한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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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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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변하자 애들이 변했다… 마을도 변했다

《 지난해 12월 19일, 동아일보는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6학년 학생 110명을 대상으로 ‘나눔’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스스로 찾아서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학생의 63%(70명)가 “없다”고 답했다. “왜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느냐”고 이유를 묻는 세부 질문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라는 답변이 42명으로 가장 많았다.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10명) △내가 안 해도 다른 누군가가 할 것 같다(10명) △귀찮고 하기 싫다(4명)는 답변도 나왔다. 107명이 돈을 기부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지만 지금까지 기부한 총액은 1인당 평균 1만8000원에 그쳤다. 또 스스로 마련하기보다는 부모의 지갑에서 나온 경우(67명)가 많았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나눌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27명이 “없다”고 했다. 》
“이 아가들 없으면 어찌 살까 몰라.” 지난해 12월 28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의 노인회관에서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지리산고 학생들은 매일 점심시간에 틈을 내 봉사활동을 한다. 산청=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이 아가들 없으면 어찌 살까 몰라.” 지난해 12월 28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의 노인회관에서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지리산고 학생들은 매일 점심시간에 틈을 내 봉사활동을 한다. 산청=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행위는 공존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나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주변을 돌아보고 내 이익만이 아닌 ‘우리’의 이익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돼 있어야 한다. ‘나눔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 학교, 나눔을 가르치다


“모여 웃고 떠드는 동창회 말고 차라리 모여서 이웃을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1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의 지리산고 졸업식장. 박해성 교장은 졸업생들에게 ‘나눔 활동’을 제안했다. “무조건 공부만 잘해 서울대에 가는 것보다 자기 형편이 어려워도 나눌 줄 아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런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커나가야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졸업하고 몇 달은 봉사활동이나 기부에 의욕적인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20년 가까이 ‘나’만 생각하며 살던 학생들이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쉽지 않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2008년부터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교생이 참여하는 △점심 봉사 △매주 목요일 7, 8교시 지역봉사 △이웃사랑나눔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눔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매년 수학여행 때는 쌀 200kg을 모아 청소년쉼터와 무료급식센터에 기부하는 행사를 연다.

미국의 비영리연구기관인 인디펜던트 섹터의 연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기에 봉사와 나눔의 경험이 있는 사람의 66.8%가 성인이 돼서도 봉사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혀 나눔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성인이 돼 나눔을 실천한 경우는 33.2%에 불과하다. 박 교장이 학교에서 나눔을 가르치게 된 것은 이런 효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학생, 나눔을 실천하다


“대학교에 가서도, 직장을 다녀도 봉사활동은 계속할 생각이에요. 저도 제가 변한 게 신기해요.”

박종휘 군(18)은 벌써 2년째 꼬박 점심봉사에 참여해 학교에서 ‘봉사대장’으로 통한다. 하지만 박 군 역시 입학 전에는 봉사활동에 관심 없던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봉사담당 교사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봉사 프로그램을 설명해줬을 때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처음 알게 됐다. 친한 선배들을 따라 봉사 현장에 구경 한번 가보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점심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이 학교 1학년 이의지 양(17)은 글자가 빼곡히 적힌 A4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양이 작성한 ‘나눔 활동계획과 서약서’였다. 지리산고는 ‘이웃사랑나눔회’라는 모임을 운영한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단순히 복지재단이나 시설에 돈을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활동계획을 세우고 월 1000원 이상 기부할 후원자를 모은다. 이렇게 모인 돈은 홀몸노인에게 쌀과 반찬을 사다주거나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들의 학용품을 사주는 데 쓴다. 사용명세는 후원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 양은 지난해 10월부터 후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부모님과 할아버지, 이모는 물론 기부에 전혀 관심 없던 친구들까지 설득해 벌써 20명이나 모았다. 장래희망도 ‘사회복지사’로 정했다.

○ 마을, 나눔에 동참하다


지리산고 전교생은 매주 목요일 7교시마다 14개 조로 나뉘어 지역봉사에 나선다. 한센병 복지센터인 성심원, 홀몸노인 쉼터인 산청실버그룹홈 등 각각 정해진 복지시설로 흩어져 봉사활동을 한다. 사회복지 시설을 찾는 것 외에 동네 할머니집에 찾아가 집을 청소하거나 농사일을 거들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28일 봉사가 있던 날도 한 조에 속한 다섯 명의 아이들은 이웃 할머니집의 말라버린 고추나무 뽑는 일을 과제로 받았다. 추운 날씨에 고추나무를 흔들어 뽑고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 가지런히 쌓았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20평(66m²) 남짓한 고추밭은 1시간도 안 돼 깨끗해졌다. 노인 혼자 힘으로는 하루가 꼬박 걸렸을 일이다.

학생들이 변하니 마을도 변했다. 처음에는 ‘몇 번 하다 말겠지’ 하고 무심하게 보던 노인들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보태고 싶다며 조금씩 돈을 걷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700여 명의 후원금으로 완전 무상교육을 하는데, 이 중 인근 주민들의 후원 액수도 꽤 된다. 노인회가 장학금을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농사짓는 주민들이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농산물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점심 간식으로 주민이 기부한 딸기가 나왔다.

○ 학교와 가정에서 함께해야


지역사회로 나눔을 전파하는 지리산고의 ‘행복한 나비효과’가 좀 더 퍼지면 성장 일변도의 그늘에서 혜택 받지 못한 소외계층에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나눔교육은 학교와 가정에서 병행돼야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나눔클럽’을 만들어 아이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 지리산고의 ‘이웃사랑나눔회’가 좋은 예다.

미국의 비영리조직인 ‘러닝 투 기브(www.learningtogive.org)’는 홈페이지에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나이에 맞게 나눔교육을 할 수 있는 수업안을 올려놓고, 나눔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 등에게 활용하게 했다. 국내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다양한 나눔교육 교재를 홈페이지(www.chest.or.kr)에 무료로 올려놓았다.

학교에서 따로 나눔교육을 시행하기 쉽지 않은 경우에는 비영리재단과 연계해 아이들의 나눔교육을 할 수 있다. 굿네이버스는 초등학교와 연계해 ‘한 학급 한 아동 결연’ 나눔을 한다. 굿네이버스를 통해 한 학급이 매달 3만 원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해외빈곤아동 한 명을 돕는 식이다.

나눔 의식을 키우는 데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권연재 아름다운재단 간사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첫 걸음마 나눔, 돌 기념 나눔, 입학 나눔 등을 통해 나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모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즐기면서 나눔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승진이나 결혼기념일처럼 좋은 날, 약간의 돈을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가족결연’ 형식으로 빈곤아동이나 사회복지시설을 후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산청=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청소년 10명중 6명 “기부 왜 해야 하나요” ▼


“빌 게이츠요? 그 사람은 그냥 돈이 많으니까 그렇죠. 저는 솔직히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지난해 말 나눔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만났던 초등학생의 말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전국 만 13세 이상 약 3만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조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3∼19세 청소년 가운데 지난 1년간 기부를 해본 적이 있는 학생은 10명 중 4명가량에 불과했다. 10대의 58.9%가 지난 1년간 한 번도 기부를 해본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도 현금을 기부해본 적이 있는 10대 가운데 90.7%는 일회성 기부에 그쳤다. 향후 기부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10대의 50.8%가 ‘없다’고 했다.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43.0%)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라는 답변은 24.9%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밖에 △기부 방법을 몰라서(11.9%) △직접적인 요청을 받은 적이 없어서(13.4%)라는 응답도 있었다.

기부를 하는 ‘이유’에 대한 답변도 눈에 띈다. 10대의 절반 이상인 56.4%는 ‘기부단체나 직장 등의 요청을 받아서’ 기부한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라는 답변은 30.8%, ‘지역사회나 국가에 기여하고 싶어서’라는 답변은 2.0%에 그쳤다.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는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 증대’(48.2%)라는 답이 가장 많았고, ‘나눔 교육과 나눔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답이 23.6%를 차지해 뒤를 이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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