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빌딩앞 태극기 어디 갔지?”

  • 입력 2009년 2월 28일 03시 09분


여기는 있고서초동 삼성타운(왼쪽)과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옥. 이훈구 기자
여기는 있고
서초동 삼성타운(왼쪽)과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옥. 이훈구 기자
여기는 없다왼쪽부터 을지로2가 SK텔레콤 사옥,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사옥, 신문로1가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김미옥 기자
여기는 없다
왼쪽부터 을지로2가 SK텔레콤 사옥,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사옥, 신문로1가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김미옥 기자
내일 3·1절 90돌

1999년 건축법 개정하면서 국기게양대 의무설치 폐지

국경일도 태극기 못걸어… “기업도 국적 있는데” 지적

최첨단 현대식 빌딩에서 태극기가 사라지고 있다. 건물을 지을 때 국기게양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던 법 조항이 1999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삭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특한 외양과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상당수 주요 빌딩 앞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 국적을 알 수 없는 랜드마크 빌딩

동아일보가 10대 그룹(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본사 및 주요 계열사와 10대 건설사 본사 사옥을 확인한 결과 SK텔레콤(서울 중구 을지로2가), 금호아시아나그룹(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현대산업개발(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옥에는 국기게양대가 설치되지 않았다.

SK텔레콤 T타워는 윗부분이 약간 꺾어지게 설계된 건물로 2004년 완공 후 부근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같은 해 지어진 현대산업개발 사옥 아이파크타워와 2008년 완공된 금호아시아나 신사옥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세 건물은 최첨단 신축 빌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공사 단계에서 국기게양대를 설치하지 않은 탓에 국경일이 돼도 태극기를 걸지 않는다.

예전에 지은 건물 앞에는 깃대 3개가 설치돼 태극기와 사기(社旗) 등을 함께 게양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신사옥 길 맞은편의 구사옥에도 국기게양대가 들어서 있다.

최신 사옥이라고 모두 태극기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완공된 삼성타운(서울 서초구 서초동)은 3개 동 모두 게양대에서 태극기와 사기가 함께 펄럭인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서관과 동관에도 깃대가 설치됐다.

○ “국적 있는 기업이라면 태극기 걸어야”

27일 행정안전부와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민간 건물의 태극기 게양은 1999년 건축법 개정에 따라 의무조항에서 제외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규제완화 차원에서 해당 조항을 없앤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기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청사 등에는 국기를 연중 게양하도록 하고 있다. 공항, 호텔, 대형건물 등에는 가능한 한 연중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게양대 설치가 의무사항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건축 실무자들은 “준공허가를 내줄 때 국기게양대 설치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국기게양대 설치는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건물 설계를 할 때 조경 등을 고려해 만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측은 “행사와 관련해 필요하면 그때그때 실내에 태극기를 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업도 엄연히 국적이 있는데 사옥에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내걸 수 있는 시설조차 마련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글로벌화를 지향하지만 국가가 있기에 기업들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며 “미국에선 현대식 대형빌딩 앞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