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칼릴 지브란 ‘예언자’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사랑하는 사람 사이엔 ‘거리’가 필요하고…

진정한 나눔은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고결한 영혼이 깨달은 삶의 진실

그 깊고 큰 사색의 길을 따라가 볼까요

예언자 알무스타파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사는 도시 오르팰리스를 떠나리라 결심한다. 마을사람들은 현자(賢者)를 잃지 않으려 막아서지만, 여자 예언가 알미트라의 생각은 다르다. ‘머무름은 굳어버려서 틀 속에 갇히는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그에게 매달리는 대신, 알미트라는 가르침을 청한다. 알무스타파가 깨달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20세기의 성서’라 불리는 ‘예언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알무스타파는 사랑, 결혼, 슬픔, 고통 등 28가지 주제에 대해 짤막한 말을 건넨다. 지은이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은 미국 뉴욕에서 외롭게 보낸 화가다. 예언자가 던지는 깊은 울림 속에는 지브란의 깊은 사색이 담겨 있다.

예언자는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상대와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무들 사이가 (너무 가까워) 서로에게 그늘을 드리게 되면 잘 자라지 못합니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충고한다. “자식에게 사랑을 준다 해도, 생각까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집착으로 망가지는 관계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나눔도 그렇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 것을 나누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언자는 이렇게 가르친다. “과수원 나무들은 자기의 열매를 아낌없이 남에게 내어 줍니다. 스스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나무들은 자기 것을 움켜쥐기만 하면 멸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움켜쥘 줄만 알고 베풀 줄 몰랐던 스크루지 영감을 떠올려 보라. 아낌없이 주는 삶이 자신에게도 좋다는 예언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터이다.

알무스타파의 깨달음은 법과 정의에 대해서도 이어진다. “저지른 죄보다 더 크게 뉘우치는 자들을 과연 벌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의 법은 뉘우침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는 이렇게 꼬집기도 한다. “황소는 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멍에를 되레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곤 숲에서 뛰노는 사슴들을 비웃지요. 길을 잃고 떠도는 불쌍한 것들이라고요. 황소에게 우리는 뭐라고 말해주면 좋겠습니까?” 법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그 자체에만 매달리면 강퍅해지기 쉽다. 알무스타파는 이 점을 일깨우려 했다.

집착에서 벗어나 넓게 보라.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기쁨과 슬픔도 그렇다. “영혼을 달래주는 피리를 만들려면 나무를 칼로 후벼내야 합니다…슬픔이 인생에 파고들면 들수록, 기쁨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지요.” 고통이 있어야 성공도 크고 아름답게 다가옴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도무지 끝날 듯싶지 않은 고통에는 어찌해야 할까. “자연은 들판 위로 지나가는 계절을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대 마음의 계절도 즐겁게 받아들이세요. 여러분의 병든 가슴을 고치는 쓰디쓴 약일 테니까요.” 계절을 인간이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살다 보면 어찌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아픔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런 고통에는 겨울을 대비하듯 담담하게 맞서야 한다.

예언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을 오르고 먼 곳을 헤매고 다녔단다. 그렇게 일상에서 멀리, 높게 떨어져 있지 않으면 진리는 찾아내기 어렵다. 팍팍한 일상에 휘둘리다 보면 정말 무엇이 소중한지 알기 어렵다. ‘예언자’는 우리를 생활에서 떼어내 멀리, 높게 떨어진 위치로 이끈다. ‘예언자’는 80여 쪽밖에 안 될 만큼 작은 분량이다. 그러나 산문시로 된 이 책은 급한 마음으로는 좀처럼 읽기 힘들다. 진리는 여유와 침착함을 갖춘 이에게만 다가간다. ‘예언자’의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그런 담담함을 먼저 익혀야 하리라.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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