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권, 순수해야 할 역사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7일 국사편찬위원회의 첫 여성 위원장으로 기용된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은 역사를 올바로 정리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다져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7일 국사편찬위원회의 첫 여성 위원장으로 기용된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은 역사를 올바로 정리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다져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 인터뷰

“지난 5년간 진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 정체성 훼손

새정부 ‘실용’ 강조할수록 우리 기준-지향점 분명해야

잠자는 역사자료 깨워 누구나 볼 수 있게 정리할 생각”

“지난 정부는 역사를 너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자세는 어디까지나 순수해야 합니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지금은 역사를 올바로 정리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제대로 다져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첫 여성 위원장으로 기용된 정옥자(66) 서울대 명예교수는 7일 “지난해 교수직을 정년퇴직하면서 이제 봉사하는 일이 끝난 줄 알았다”면서 “한 번 더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만큼 기꺼이, 열심히 일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교수는 1999∼2003년 규장각 관장을 지낼 때 흩어져 있던 사료 정리에 각별히 힘을 썼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료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친일파 문제 같은 과거사를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보는 것도 자료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가 앞섰기 때문”이라면서 “국사편찬위원회가 나서서 모든 걸 할 수는 없겠지만 힘닿는 대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도 위원장 물망에 올랐으나 ‘코드’를 앞세운 당시 정치적 분위기로 인해 발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아직 정식 임명장을 받은 것도 아닌데…”라면서도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수장고에는 국내외에서 수집한 자료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자료들을 가능한 한 많이 깨우고 싶습니다.”

역사의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과 국사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정 교수는 “일반인이 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21세기에 한국에는 또 한 번 문예부흥기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문화 콘텐츠로서 역사를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규장각에서 학자뿐 아니라 일반직 직원들과도 함께 일했다”면서 “실무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기관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융통성을 최대한 발휘해야겠지만 공사 구별을 엄밀히 따진다는 원칙은 반드시 지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규장각 관장으로서 국가 기관과 협업을 하는 동안 느꼈던 문제점을 거론하며 가장 큰 문제로 기관 이기주의를 꼽았다. 그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서로 자료를 공유하자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료는 뒤로 감추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을 한 만큼 기관 사이의 협력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 교수가 스스로 규정하는 역사관은 ‘평화사관’이다. 6·25전쟁 때 아버지와 동생들을 눈앞에서 잃은 비극적인 가족사가 평화사관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생들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 왔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그런 아픔이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늘 ‘평화’라는 화두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정 교수가 대학을 마친 뒤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다시 계속한 것도 가족과 주변 친지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다.

역사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정부의 역사 교육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정 교수는 다시 지난 정부 때 일어난 문제부터 거론했다. 그는 “지난 정부의 역사관은 너무 이데올로기적이었고, 진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일을 많이 벌였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는 실용주의와 세계화를 강조하는데 그럴수록 우리의 기준과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고 지향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신이 해체되고 물질만 좇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습니다. 기준과 정체성을 제대로 다지는 일의 중심에 역사가 있어야 하고, 제대로 다지는 쪽으로 역사 교육을 해야 합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국사편찬위원회 첫 여성위원장 정옥자 교수는 누구▼

6·25때 아버지-세 동생 한꺼번에 잃는 비극 겪어

결혼-육아후 뒤늦게 학업재개… 39세때 교수임용

아들-딸도 직장다니다 대학-대학원 늦깎이 공부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 후기 문화사를 재조명한 사학자이자 지난해 정년퇴임식에서 서울대의 환골탈태를 당부할 만큼 비판의식을 잃지 않는 지성이다.

그는 6·25전쟁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족의 비극을 겪었다. 1942년 강원 춘천시에서 1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난 정 교수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6·25전쟁 때 피란길에 청평호수를 건너던 배 위에서 아버지가 명함에 유서를 써둔 채 세 여동생을 안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남은 가족은 어머니와 정 교수뿐. 이후 피란길에서도 젊은 군인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칼럼집 ‘오늘이 역사다’에서 “질척한 삶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삶의 줄을 뚝 끊어 버리고 싶을 때, 그 젊은 군인이 환영처럼 다가와 ‘내가 어렵게 살려 놓은 네 목숨은 네 것이 아니야. 너는 죽은 사람들의 몫까지 살아야 해’ 하며 속삭인다”며 안이한 삶을 스스로 경계하도록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그는 30대 중반에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서른아홉 살인 1981년 서울대 국사학과 첫 여성 교수로 임용됐다. 여성 교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당시 교수 사회에서 유언비어와 심한 모욕적인 말을 들었으나 특유의 강단으로 차별을 이겨냈다.

1980년대 이른바 ‘운동권의 소굴’이었던 국사학과에서 그는 당시 학생들의 열정이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도 4·19혁명 때 동덕여고 학생회장으로 시위에 앞장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의 성품은 지난해 정년퇴임에 즈음해 펴낸 학술서 ‘조선시대 문화사’의 간행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주제도 통일되지 않은 잡동사니 논문집’으로 제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정년 논총을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자들은 스승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말했고, 정 교수는 의례적 문집에서 벗어나 일관된 흐름으로 조선시대 문화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이 책을 제자 27명과 함께 펴냈다.

정년교수 퇴임식에서도 “서울대 폐지론까지 나온 건 서울대 출신이 누려온 특권의 그림자 때문”이라며 “대학은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되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뼈 있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1986년 서울대 교수들이 전두환 정권의 정권 연장 기도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칠 때 이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의욕만 앞서고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며 각종 정치 현안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 왔다. 민주화운동의 전력을 팔아 공을 보상받으려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관심 영역 밖이었던 조선후기 문화사를 조명하고 영·정조 시대를 일반인이 알 수 있도록 한 것은 학자로서 그의 대표적 업적이다. 1999∼2003년 규장각 관장을 지내며 조선시대 사상과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학문적 역량을 후원하고 연구 업적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힘썼다.

정 교수의 자녀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두 아들과 딸은 남들처럼 정해진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뒤늦게 공부를 마쳤다. 둘째 아들은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에 실패하자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 끝에 대학을 마쳤고 지난해 서울대 공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딸도 고교를 마친 뒤 10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 전문대, 방송통신대를 거쳐 현재 명지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정 교수는 “과외도 시키지 않았고 자기들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뒀기 때문”이라면서 “그래도 아이들이 잡초 같은 강인한 면이 있어 다들 알아서 제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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