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으로읽는시사이슈]‘강부자 내각’ ‘돈 철학’

  • 입력 2008년 3월 3일 06시 49분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장관 후보자들의 재산 총액이 대략 962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이런 부자내각을 두고 일부에서는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재산이 많다는 것 자체가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절대농지를 보유한 장관 후보자가 있는가 하면 후보자 중 일부가 세금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등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 논란이 갈수록 확대되는 것을 보면 ‘강부자 내각’이라는 냉소적 표현이 허언(虛言)만은 아닌 것 같다.

이번 논란은 몇몇 개인들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의식과 연관된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인간 생활의 단순한 수단에 불과했던 돈이 인간의 능력과 모든 가치를 대표하는 척도로 올라선 지금의 역설적 상황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처럼 보인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그의 주저에 해당하는 ‘돈의 철학’에서 돈의 본질과 속성을 마르크스(Marx)와는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았다. 짐멜은 돈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축복과 재앙을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돈은 인간들이 더 큰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개인 간의 관계를 새롭고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적 삶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보다 풍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다 통속적인 차원에서 짐멜은 인간들의 삶의 관계를 풀어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돈이 삶 자체의 목적이 된 현실을 인정한다. 즉, 돈 없이는 삶의 많은 부분이 불편하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짐멜은 돈에 대해 경계심도 잊지 않았다. 돈은 개인을 다른 사회 구성원과 대상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심지어 소외시킬 수도 있다. 또 돈은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을 때 인격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돈의 철학’에서의 첫 번째 대답에 ‘몰입’하고 두 번째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을 이번 사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돈의 철학’은 없고 ‘돈을 위한 철학’만 존재하는 사회, 혹은 ‘삶에 대한 물음’은 없고 ‘부에 대한 물음’만 남은 사회가 우리의 미래상일 수는 없다. 짐멜이 ‘돈의 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돈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삶과 인간을 위한 철학’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이 고전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홍영용 학림학원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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