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학간섭 줄이되 사회적 책임은 무겁게”

  • 입력 2007년 10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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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총장 포럼’ 참가 3개大 총장 특별좌담

《‘정부로부터 영향은 더 가볍게, 사회에 대한 책임은 더 무겁게.’ 11, 12일 서울대에서 열린 ‘2007 세계 총장 포럼’이 끝난 뒤 호주 시드니대 개빈 브라운(65) 총장, 미국 라이스대 데이비드 리브론(52) 총장, 그리고 서울대 이장무(62) 총장은 특별 좌담을 열었다. 동아일보가 12일 마련한 이 좌담회에서 세 총장은 “21세기 대학의 창의적 학문 활동을 위해 정부의 간섭은 줄여 나가되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한 봉사의 정신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포럼을 끝내며 채택한 ‘서울선언’에는 △학제적 지식 구축 △세계화 △인류를 위한 장기적 문제 연구와 함께 대학자율화 등 4개 조항이 포함돼 있다. 대학교육정책에서 정부의 역할과 한계는….

▽리브론=오늘날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필수적 요소가 됐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한 이에 따른 책임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자율적 환경의 조성도 또한 중요하다. 인간의 호기심과 창조적 영역을 탐구하는 데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이 가장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율성이 다른 모든 것에 앞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사회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런 긴장관계를 생산적 방향으로 유지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브라운=정부는 대체적 요강만 제시하는 교육정책(broad education policy)을 취하고 대학의 세부정책에까지 개입해선 안 된다. 대학 스스로 학생을 선발할 권리를 가져야 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예산을 자유롭게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권을 존중하되 2년에 한 번꼴로 집행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검토해 필요하다면 총장을 파면하는(웃음) 등의 조치를 취하는 식으로 대학을 규제해야지 구체적 정책에 사사건건 개입해선 안 된다.

▽이=학문의 자유는 대학이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자유다. 정부기관의 지나친 간섭은 대학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저하시키고 교육과 연구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다. 정부가 대학에 간섭하기보다는 대학의 질 보장 장치(quality assurance system)로 대학 스스로가 책임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이 정부의 싱크탱크나 기업 친화적 연구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대학의 세속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

▽브라운=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대학은 기업과 정부로부터 연구를 위한 많은 지원을 원하는 동시에 그들이 대학의 연구 활동에 과도한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대학은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사회적 요구를 외면해선 안 되는 만큼 사회도 대학이 그런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리브론=대학이 외부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대학이 지역사회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도시에 위치한 대학일수록 도시적 삶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둘째는 치열한 경쟁으로 대학이 외부 세계에 자신의 활동을 널리 이해시키고자 노력하게 됐다는 점이다. 사회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서 관심과 지원을 기대할 순 없으니까. 셋째는 대학사회의 경제적 관심의 증대다. 이에 따른 좋은 측면은 인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의 생산에 기여하게 된 것이고 나쁜 측면은 대학과 기업의 의사결정구조가 닮아가게 된 점이다.

▽이=대학의 역할은 지식생성, 인재양성, 사회봉사이며 이들은 똑같이 중요하다. 사회봉사의 관점에서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정책결정에 기여하거나 산업계에서 직접적 형태로 기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대학 구성원이 사회와 소통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엄격한 기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교수라는 지위와 신분을 이용해 권력이나 영리를 추구하는 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과 구성원은 정부와 사회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늘 비판 정신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세속화는 경계해야 한다.

―우수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많다. 두뇌유출이 학문과 교육의 공동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학문의 식민지화’를 낳을 것이란 비판도 있는데….

▽브라운=두뇌유출(brain drain)이라는 표현보다는 두뇌 순환(brain circulation)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어떤 나라에서 인재가 나가면 다른 나라에선 다른 인재가 들어오기 마련이니까. 이주의 자유와 자본 이동의 자유가 가져오는 이점이 학문세계에서도 실현되는 셈이다.

▽리브론=학생들이 해외로 나가 교육을 받는 일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제적 시각을 넓혀 주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으니까. 두뇌 유출의 문제는 그 나라의 발전 상황에 달렸다. 가령 미국에 온 한국 인도 중국 등지 유학생의 경우 모국에서 그들이 원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미국에 남을 수밖에 없었지만 최근에는 연구 환경과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면 대부분 모국으로 돌아가는 걸 볼 수 있다.

▽이=1960∼70년대 한국의 대학원 교육은 거의 외국 대학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대학원 교육, 연구 수준은 어떤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서울대로 장단기 유학을 온 외국 학생도 2000여 명에 이른다. 서울대가 세계 속 일류대학과 건실하게 경쟁하고 상호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해외 유학 증가가 영약이 될 수도 있다.

정리=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美 라이스大 데이비드 리브론

― 2004년부터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꼽히는 라이스대(미국 휴스턴 소재) 총장으로 재직 중

― 컬럼비아 법대 교수

― 법학박사

● 서울大 이장무

― 2006년부터 서울대 총장으로 재직 중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현)

― 기계공학박사

● 호주 시드니大 개빈 브라운

― 1996년부터 호주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시드니대 총장으로 재직 중

― 아시아태평양대학연합(APRU) 회장(현)

― 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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