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글쓰기 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5)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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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훈련의 마지막 단계는 창의적 적용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평가한 내용을 주어진 과제 해결에 적용해서 논술하는 단계이지요. 물론 그러한 적용이 왜 타당한지에 대한 근거도 제시해야 합니다.

창의적 적용에 대해서는 이미 살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논술이 말하는 창의성은 ‘창의적 발상’보다는 ‘창의적 문제 해결’에 가깝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도의 응용능력, 적용능력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배운 것을 적용하고 응용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력은 영역전이적인 통합 사고능력입니다. 한 영역에서 배운 내용을 다른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실제로는 영역 전이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교과 안에서 이뤄지는 가까운 영역전이도 있고, 교과의 벽을 넘어서 이뤄지는 먼 영역전이도 있습니다. 국사에서 배운 것을 세계사의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적용하는 것은 비교적 가까운 영역전이에 속하지만 국어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적용하는 것은 그보다는 먼 영역전이에 속합니다. 통합교과형 논술 문제는 창의적 적용 능력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먼 영역전이에 해당하는 문제를 자주 출제합니다. 수리 논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학에서 배운 원리를 적용해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리 논술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논술에서 창의성이 강조된 것은 최근부터가 아닙니다. 이른바 ‘고전 논술’이라 부르던 과거의 논술에서도 창의적 적용 능력을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보았습니다. 고전 제시문의 관점이나 내용을 해석한 다음 현실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고전 논술의 전형이었습니다. 이때 ‘고전’이란 반드시 옛 문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문헌이라도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것이면 다 포함되는 것이지요. 실제 문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예1] 다음 글은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글은 ‘복서’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어떤 문제들이 이 글에 암시되어 있는지 글의 내용에 근거하여 밝히고, ‘복서’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의 견해를 논술하라. (서울대 기출문제)

[예2] 다음 제시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 이야기이다. 현대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피그말리온 신화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 신화가 현대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연세대 기출문제)

[예3] 아래에 제시된 고대의 신화나 설화들은 각기 여러 가지 복합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함의들 가운데서 오늘날 우리 청소년 문화의 성격을 검토하는 데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 이에 비추어 청소년 문화의 다양한 현상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성균관대 기출문제)

이 예들은 모두 고전 소설 신화 설화 등을 제시문으로 주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해석 평가한 다음 사회 문제에 적용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고전 논술의 문제입니다. 제시문의 내용을 현대사회의 문제에 얼마나 창의적으로 적용하느냐가 핵심적인 평가 항목입니다.

[예1]이나 [예2]처럼 적용할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사회 문제 전체로 열어 놓을 수도 있고, [예3]의 경우처럼 ‘청소년 문화’라는 구체적인 문제로 지정해 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창의적 적용 능력이 복합적, 이중적으로 평가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어진 제시문이 문학 작품이나 신화 설화이기 때문에, 학생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그 내용이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시문의 내용을 현실에 창의적으로 적용하기 전에, 제시문을 해석하는 단계부터 자신의 관점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 개입된다는 것이지요.

고전 논술에서는 실제로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열린 텍스트를 제시문으로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경우 자신의 관점을 창의적으로 적용하여 텍스트를 해석하고, 해석된 내용을 또다시 창의적으로 현실 문제에 적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고전 논술은 창의적 적용이 대단히 강조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소재나 문항의 형태에서는 변화가 있습니다. 통합 논술은 고전을 현실에 적용하는 포괄적인 방식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의 대상이나 영역을 지정해 주는 경향이 강합니다. 구체적 문제를 명시한 다음 주어진 제시문의 내용이나 자료를 적용하여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게 한다든지, 사례나 그래프, 도표를 주고 지문 내용을 적용해서 설명하거나 해석하게 하는 방식이 더 선호되고 있습니다.

창의적 적용은 논술에서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 항상 가장 핵심적인 평가 요소였습니다. 이 점은 통합 논술 역시 새로운 논술이 아니라 논술의 원래 의도를 더 뚜렷이 살리는 형태임을 증명합니다. 따라서 고전 논술의 기출 문제들도 지나간 경향의 낡은 문제로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문제들도 논술 학습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소중한 자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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