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직장인 “난 스타플레이어”…팀워크보다 ‘개인기’

  • 입력 200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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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27) 씨는 얼마 전 회사를 떠난 입사 동기 K 씨 때문에 한동안 상사들에게 “문제가 많은 동기들”이라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기 전 이 씨 동기들은 마케팅 부서 체험을 위해 부장 및 부서원들과 회식을 했다. 술이 몇 잔 오가는 와중에 말을 험하게 하는 한 선배가 동기 한 명과 말다툼을 벌이다 “그런 식으로 선배를 대할 거면 회사를 때려치우라”고 했다. K 씨도 즉각 “나도 당신 같은 상사 밑에서 다니기 싫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1주일 뒤 이 회사 사장은 K 씨 어머니에게서 “술버릇이 좋지 않은 상사 때문에 우리 아이가 회사를 못 다니겠다고 하는데 회사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이 상사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직 내에서 평판만 나빠진 K 씨는 얼마 뒤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대학을 들어가 현재 20대 중후반인 ‘0080세대’가 대거 입사하면서 기존의 기업문화와 불협화음이 생기는 일이 여느 직장마다 흔한 일이 돼버렸다.

○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라 베컴

대기업 법무팀장인 신모(35) 씨는 최근 신입사원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하고 팀 운영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신 씨는 최근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회사의 전략적인 태도를 입안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즉시 6명의 팀원을 불러 “한 명도 빠지지 말고 각자 맡은 일보다 먼저 이 일을 해 보자”고 했다가 한 신입사원의 말대꾸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그는 “내게 맡겨진 일도 많은데 굳이 내가 팀에 맡겨진 일까지 나서서 해야 하느냐”며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다 맡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신 씨는 “신입사원의 발언 뒤로 팀 전체 분위기가 흐려져 회식 때도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며 “신입사원의 능력이 좋은 것은 알지만 팀워크를 해치면서까지 그 신입사원을 데리고 있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수평적인 관계에 익숙한 이 세대는 기업의 상명하복형 위계질서에 쉽게 동화하지 못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서도 인사담당자들이 대졸 신규 채용인력에 대해 가장 낮은 점수를 준 부분은 바로 조직이해능력(100점 만점에 61.7점)이었다.

현대증권 인사팀의 박주호 과장은 요즘의 신입사원을 프로축구팀에 비유해 설명했다.

0080세대는 자신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프로축구팀) 소속의 선수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스타플레이어인 ‘데이비드 베컴’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만큼 조직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면서 조직이 개인의 재능이나 적성을 모르고 업무를 맡길 때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쉽게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명언 교수는 “핵가족 시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숙한 이 세대는 조직생활에 대해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며 “이들은 개인플레이에만 익숙했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시간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 수평적 관계 익숙해 위계질서 무시

디자인 회사에서 5년째 일하는 김모(28) 씨는 요즘 후배들 때문에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김 씨는 “지난주에는 후배 한 명이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바로 실장에게 가서 ‘야근이 많고 몸이 힘들어서 회사를 더 다닐지 고민’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후배는 선배에게 대놓고 ‘선배 방식으로는 일을 못 하겠다’며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였다”며 한숨을 쉬었다.

1990년대 말부터 대학마다 학부제가 생기면서 예전의 과(科) 단위로 형성된 선후배 문화도 사라졌다. 이런 대학 시절의 경험 때문에 이 세대는 직장 상사를 대학 때 학번은 위지만 서로 존댓말을 쓰는 선배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대학 성적 또는 외국어 구사능력만이 바늘구멍 같이 좁은 입사 경쟁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라는 점이 이들의 사회 적응 방식을 결정지었다”며 “개인주의가 팽창하다 보니 회사에 들어와서는 팀워크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점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인터넷서 자료 찾아 보고서 작성

전공지식도 많고 정보도 잘 찾는 요즘 신입사원은 막상 문제가 닥치면 종합적으로 판단해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사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신모(34·여) 씨는 1년 전 한 신입사원의 보고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2년 전에 작성했던 인사 혁신에 관한 보고서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회사 내부전산망에 참고용으로 보고서를 올려놓았는데, 그 신입사원은 바로 자신 앞에 있는 선배의 보고서라는 사실을 모른 채 ‘짜깁기 보고서’를 내놓은 것.

인터넷에 익숙한 이 세대는 심층적인 데이터 분석과 자신의 판단력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할 때 인터넷에서 자료를 짜깁기해 제출하는 사례가 많다.

기업 현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수만 가지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지식 외에도 문제를 나름대로 정의하고 자신만의 고민과 판단력을 통해 해답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디지털 세대는 이런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

인사담당자들도 직업기초능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문제해결능력이었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것은 외국어능력과 수리능력이었다.

교육 관련 회사에 다니는 최효은(30) 씨는 “요즘 신입사원들의 외국어, 컴퓨터 능력이 뛰어나 개개인의 능력은 나아진 것 같다”며 “하지만 의외로 스스로 일을 해결하기보다는 상사의 지시가 있기만 바라는 경우가 많아 놀랄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0080 새내기 직장인

컴퓨터 1981년 태어난 해 국내최초 생산
외국어 초등생 때부터 세계화 열풍 “ABC”
취업난 대학 졸업할 때엔 입사전쟁 치열

롯데리아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에 국내 최초의 패스트푸드체인점을 연 것은 1979년 10월. 그로부터 1년 3개월 후인 1981년 1월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은 서울 청계천의 사무실에서 국내 최초의 개인용컴퓨터(PC)를 만들었다.

회사원 박주희(26·여) 씨는 1981년 9월 정보화의 상징인 컴퓨터가 등장한 해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치원에 다닐 때 민주화가 이뤄졌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패스트푸드를 처음 먹어 본 것도 같은 해였다. 박 씨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치킨을 사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 이후에도 계속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고 기억했다.

민주화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 사라졌고, 경제적 풍요 속에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취해진 데 이어 1990년대 초반에는 세계화 열풍이 불었다.

박 씨도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2년부터 학습지 교사를 통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갖게 된 것은 그 다음 해였다. 박 씨는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사주셨는데 주로 타자 연습을 하거나 슈퍼마리오 같은 게임을 즐겼다”고 말했다.

박 씨는 중학교 3학년 때(1996년) 부모에게 호출기를 선물 받으면서 개인 통신수단을 갖게 됐다. 다음 해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고 박 씨 아버지의 식료품 사업도 위기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박 씨의 고교 3학년 같은 반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다. 고교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0년 24%였다가 2000년 68%로 급상승했다.

한국통신이 최초로 인터넷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박 씨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1994년이었지만 그가 실제로 인터넷을 접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간 2000년이었다. 같은 해 휴대전화도 처음으로 갖게 됐다.

이때에는 대학 캠퍼스에 ‘청년백수’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취업 준비 경쟁이 치열해졌다. 박 씨도 2학년 겨울방학 때 컴퓨터 자격증을 땄고, 3학년 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2005년 2월 졸업한 뒤 직장을 잡지 못해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다 12월에 중소 반도체 회사에 취직해 지금은 3년차 직장인이 돼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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