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불량’ 영어교과서

  • 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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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을 떠나는 초중고교생이 해마다 1만5000명을 넘는다. 위험 부담을 안고 유학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동기는 ‘영어’다. 올해 서울대 신입생 가운데 고급 영어를 수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학생은 27%였다. 초등학교 4년, 중고교 6년에 걸친 한국의 영어교육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얘기다. 자녀가 성인이 될 무렵이면 영어가 생존의 필수 무기가 되어 있을 거라는 사실은 알 만한 학부모는 다 안다. 그래서 조기유학은 영어를 확실하게 습득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염원의 산물이다.

▷영어교육이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불량 교과서’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에 따르면 고교 영어 검정교과서 가운데 5종을 살펴본 결과 30여 개의 오류가 발견됐다. 더 큰 문제는 한국식 영어 표현, 즉 ‘콩글리시’가 적지 않아 부자연스러운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점이라고 한다.

▷고교 영어교과서는 15종이다. 나쁜 교과서를 걸러 내는 경쟁의 틀은 갖춰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나눠 먹기 시스템이 도사리고 있다. 책을 잘 만드나 못 만드나 출판사에 돌아가는 순이익금을 똑같게 한 것이다. 선진국에선 교과서 제작에 특히 많은 돈을 들여 다른 종류의 책보다 화려하고 충실하게 꾸민다. 교과서를 최고의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과서에 손이 가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영어교과서는 싼값 제작에 담합의 대상까지 되니 영어교육의 한 축이 무너진 셈이다.

▷미국 교포들은 요즘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친다는 소식이다. 과거에는 미국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라고 한국어를 못 쓰게 했던 그들이다. 생각이 바뀌게 된 건 영어만 잘해서는 한국계로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다 잘하면 생활경쟁에서 그만큼 유리하다. 우리도 영어와 한국어를 다 잘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앞으로 한국인의 활로이자 언어교육의 방향이다. 국내 교육만으로 영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조기유학은 줄어들 것이다. 영어교육의 쇄신이 그래서 절실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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