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선교수 강단서 느낀 인문교육 실상과 문제점 지적

  • 입력 2004년 2월 23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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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열풍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문예지 ‘문학·판’ 봄호는 대학교수가 현장에서 느끼는 인문교육의 문제점과 실상을 실었다.

홍정선 인하대 국문학과 교수(50)는 ‘수능시험과 문학교과서로 본 우리나라의 문학교육’이란 기고에서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문학교과서가 작품들을 도식적으로 해설할 뿐 아니라, 사실이 잘못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내용 요약.

● 대학 현실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는 고교성적이 상위 5∼8%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필자는 학생들이 백석의 시 ‘北方에서’의 한자 ‘北方’을 읽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휴대전화가 구형이면 속상해 하지만 ‘북방(北方)’을 읽지 못한다고 속상해 하지는 않는다.

● 수능과 고교 문학교과서의 문제점

지난해 논란을 빚은 뒤 결국 복수정답으로 처리된 수능시험 언어영역 17번 문제 사건은 우발적 실수라기보다는 수능시험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예다. 이 문제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작품(백석의 ‘의원’ 등)에 대해 출제자의 생각만 강요한 것이었다.

문학교과서의 도식적 해석이나 오류도 문제다. 교학사의 문학교과서는 이광수의 ‘무정’, 최남선의 ‘백팔번뇌’를 각각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과 최초의 시조집이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각각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며 최초의 ‘근대 시조집’이다. 또 농민문학이라 할 수 없는 이광수의 ‘사랑’과 ‘무정’이 농민문학인 것처럼 해설해 놨다.

출판사 블랙박스의 교과서에 수록된 이육사의 시 ‘꽃’에 나오는 ‘때’는 ‘땅’이라고 써야 옳다. 민중서림 교과서는 윤동주의 출생지를 만주 용정이라고 소개했으나 실제는 만주 명동촌이다.

해석이 피상적인 것도 많다. 일제강점기 작품의 경우 지나치게 애국적 해석을 강조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윤동주의 ‘십자가’ 등이 그 사례. 이들은 개인의 내면을 다룬 점이 강조돼야 할 작품들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김수영의 시 ‘눈’에 나오는 시어인 ‘기침’과 ‘눈’에 대해 각각 ‘속물성’과 ‘순수성’을 뜻한다며 대립적으로 해설했다. 이는 옳지 않다. ‘기침’에는 ‘살아있음을 증명할 무엇’이라는 뜻이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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