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충북]"시골선 병원가지 말란건가"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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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과다경쟁으로 문란해진 의료질서를 바로 잡는다며 지난달부터 병 의원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전면 금지시키는 바람에 농어촌지역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멀어진 병원=1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병원. 군내 유일한 종합병원인 이 곳 주차장에는 지난달 16일부터 병원 셔틀버스 6대가 멈춰서 있다. 이 병원 셔틀버스는 운행중단 조치 이전에 하루 24차례 시골 벽지를 운행했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김모씨(75·무안군 해제면)는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아 30분이면 올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렸다”며 “이제 시골 늙은이들은 병원에도 다니지 말고 그냥 죽으란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김씨는 마을 앞에서 군내버스(750원)를 타고 해제면까지 온 뒤 다시 버스(1700원)를 갈아 타고 무안읍에 도착했다. 읍에서 병원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2300원을 주고 택시를 탔다. 생활보호대상자인 김씨는 병원에서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지만 이날 하루 왕복 교통비로만 9500원을 지출했다.

지난달 13일부터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된 충북 옥천지역 주민들로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

다리 치료를 위해 매일 병원을 찾는다는 박모씨(55·영동군 학산면)는 “버스터미널과 병원을 30분 간격으로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매일 7000원의 택시비를 내고 있다”며 “셔틀버스가 운행을 못하면 다른 교통수단을 마련해 줘야 할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현실을 무시한 법=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국회에서 병 의원의 셔틀버스 운행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법 시행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는 동일 지역에 경쟁 의료기관이 없는 경우에 한해 시장 군수가 셔틀버스 운행을 승인하도록 별도의 지침을 마련했으나 농촌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전남 중소병원협의회 관계자는 “동일지역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데다 경쟁 의료기관도 종합병원, 개인병원, 의료원, 보건소까지 포함한 전 의료기관으로 규정해 모든 읍 면에 의료기관이 있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아 혼선만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경기 K시 보건소 관계자는 “노약자나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 무료 셔틀버스 운행했으나 의료법 개정으로 11일부터 부득이 운행을 중단했다”며 “보건소나 의료원은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기관이 아닌 만큼 버스운행을 계속하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확산되는 반발=전국에서 의료여건이 가장 열악한 전남지역 중 소병원장들은 최근 보건복지부 지침과 상관없이 해당 자치단체에 셔틀버스 운행을 위한 사전 승인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생활보호대상자, 60세 이상 고령자, 신체 정신 장애자 등이 병원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탑승증을 발부하는 대신 병원은 탑승증을 가진 승객만 태우고 이들의 진료기록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병원장들은 사전 승인요청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대한병원협회 산하 전국 중소병원연합회와 연대해 보건복지부를 항의 방문하고 행정소송을 낸 뒤 셔틀버스 운행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병 의원 교통편의 제공을 금지한 것은 무분별한 환자유인을 막고 건강보험 재정누수를 줄이자는 취지”라며 “법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제기됨에 따라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무안=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옥천=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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